건국포장 수상한 김교신 선생

광복 65주년을 맞아 <성서조선>을 창간한 김교신 선생이 건국포장을 받았다. 김교신은 1942년 <성서조선>의 권두문에 ‘조와’(弔蛙)라는 글을 통해 어떤 혹한에도 살아남는 민족의 희망을 개구리의 생명력을 빌어 노래한 혐의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다닌다. 아, 전멸(全滅)은 면했나 보다!”
국가보훈처가 8월 11일 광복 65주년을 맞아 선정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338명 가운데 <성서조선>을 창간한 김교신이 포함됐다.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하다가 옥고를 치른 그가 광복 65년 만에 건국포장(建國褒章)을 받게 된 것이다.

 

1901년생인 김교신은 1942년 <성서조선>의 권두문에 ‘조와’(弔蛙)라는 글을 써 1년간 감옥에 갇혔다. 이는 ‘얼어 죽은 개구리를 애도한다’라는 뜻으로, 어떤 혹한에도 살아남는 민족의 희망을 개구리의 생명력을 빌어 노래했다는 혐의였다.

이어 김교신은 “지금 우리에게 오는 모든 동상(凍傷)은 춘양(春陽)의 부활을 확실히 하고자 하는데 없을 수 없는 과정 … 우리의 소망은 오직 부활에 있고 부활은 봄과 같이 확실히 온다”고 하여,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지배로 인해 침체된 조선민족의 영혼을 일깨운 내용으로 지목되어 관계자 여럿이 체포되고 잡지의 폐간까지 불러왔다. 

이른바 ‘성서조선 사건’으로 이와 관련해서 이미 2002년 함석헌, 2004년 유달영이 건국포장을 받았었다. 올해 국가보훈처는 “일제 정보문서, 신문보도 기사 등을 찾아 분석?검토한 결과, 민족주의를 고취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김교신 선생, 함께 활동하다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송두용 선생 두 분에게 건국 포장을 주서하게 됐다”고 밝혔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옥고를 치르고 나서도 김교신은 흥남의 일본질소비료공장에 노동자주택 관리계 직원으로 입사했다. 조선 노동자들의 생활 개선과 인격적인 각성을 돕기 위해서였다.
국가보훈처는 이러한 그의 삶이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했다고 보고, 광복절을 맞아 건국포장을 수여한 것이다. 그런데 김교신의 조선사랑, 민족사랑은 그의 기독교 신앙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예수의 삶을 묵상하며, 그를 닮고자 노력했다. 


“세상 사람들은 미꾸라지처럼 유영술을 부려 상층으로 상층으로만 사교를 넓히고 지위를 높이며 세력을 펼칠 때에 예수만은 낮은 하수도로 하수도로만 향했다. 거기서 병상(病傷)한 자와 패퇴한 자의 한숨을 들어주시고 눈물을 씻어 주셨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달아 비천과 치욕의 극에까지 내려 가셨다.” 


결국 그는 발진티푸스에 감염된 노동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1945년 4월 24일,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김교신은?
종교인·교육자(1901~1945). 경기 중학, 양정 중학에서 박물학(博物學)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을 발간하였는데, 1942년에 일본 관헌에 의하여 폐간됨과 동시에 옥고를 치렀다. 저서에 <김교신 전집>이 있다.


이범진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