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제작 마감시간이 지날 무렵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서만수 선교사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소식입니다. 서만수 선교사님의 쾌유를 기도하는 어느 후배 선교사의 글을 독자면에 실었다가 내립니다. 예장합동 총회세계선교회가 ‘첫 원로선교사’로 추대했다는 기사를 바로 지난 신문에 내보냈는데, 이제 하나님께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결국 당신의 인생을 드린 새 ‘조국’에 뼈를 묻는 셈입니다. 불과 한 달 남짓 전, 의사로부터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가슴이 아픕니다.


“나는 다시 자카르타로 향하여 간다. 태어나서 자란 이곳을 다시 한 번 떠난다. 아무도 아는 사람도 오라는 사람도 없는 그곳에 말씀을 받아 파송 받은 지 어언 40년을 바라보면서 ...2004년4월, 43일간의 혼수상태를 떨쳐버리고 회생하여 아무도 붙들지 않고 막지 않았던 그 길을 떠나던 그때처럼, 나는 다시 떠난다. 다음에 또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할지라도 그곳, 아무래도 이곳보다는 영적으로 어두운 그곳을 향해 나는 떠나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사역의 중심은 오지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었다”고 고백한 분이었습니다. 이슬람의 나라 인도네시아 선교 40년에 사역자를 세워 384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한 해에 열 교회 이상을 개척한 셈입니다. 밀림을 다니며 그는 수많은 위험에 놓였으나 “작전지에 투입된 게릴라는 오직 임무수행의 명령만 받았을 뿐”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면서 3000개 촌락마다 십자가를 세우는 꿈을 꾸었습니다. 교회만 개척을 위해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 중에서 사역자 후보를 찾아 신학교육을 시키고, 그들이 그들의 민족과 더불어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기도하였던 분입니다. 5년제 정규 신학대학인 스틴(STTIN) 신학대학교가 그 열매입니다. 귀화하여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모슬렘권 선교의 교두보를 든든히 세워놓았습니다. 늘 마땅히 할 바를 했을 뿐이라 말하던 그분이, 이제 달려갈 길을 다 마친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사역 초기에 설립하여 온전히 함께 하신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 가족들의 슬픔에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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