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 교회, 학교 세우고 함꼐 살며 새 생명 얻어

필리핀 오지에 희망을 전하는 김자선 선교사

“작년에 김자선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필리핀 북부의 오지 뚜게가라오 라굼지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김 선교사님이 개척한 교회 교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길이 너무 험하여 약속 시간을 훨씬 지나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밤이 깊었고, 집회는 힘들겠다 생각했는데 교회에 도착해 보니 김 선교사님과 현지 성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우리 일행을 늦은 밤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집회가 끝났는데 말씀을 갈망하고 받아들이는 그분들의 뜨거운 심령이 오히려 말씀을 전하는 저에게 어찌나 큰 감동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고신대 김성수 총장은 <아름다운동행> 독자들에게 소개할 ‘바로 그 분’이라며 김자선 선교사를 추천하였다. 마침 고신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방한한다고 하였다. 첫 명예박사이고, 그것도 보수 교단을 배경으로 한 학교가 여성에게 수여하는 학위여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행사라 하였다. 김 총장은 마땅히 학위를 받아야 할 분에게 수여하는 것이라 자랑스러워 하였다.

#쉰다섯의 할머니를 하시나요?

부산에서 김자선 선교사를 만났다. 쉰다섯이라 했지만 할머니 소리를 들을 정도의 외모였다. 김 선교사의 회고록을 보고 난 뒤 그 ‘늙음’이 오히려 훈장처럼 아름다웠다. 20년의 세월을 문명이 닿지 않는 오지에서 선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녀의 늙어버린 외모로만 증명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언어로써 설명할 일은 분명 아닌 듯싶다. 한 번 앓아도 힘든 말라리아를 세 차례나 앓았고, 긴장 속에서 몸을 혹사시킬 수밖에 없는 오랜 세월이었으므로….
대신 그 얼굴의 세월만큼 거대한 일들이 그녀의 뒤로 꽃처럼 피었다. 라굼, 로마, 아파리, 바이얀, 깔라오, 성안토니오, 바시, 시심, 까보, 리완, 다쑨지역에 교회 16개 처를 개척하였고. 앞으로 교회가 될 기도처소만 14곳이며, 10개 유치원과 초등학교 한 곳도 설립하였다. 현지 성도들을 위해 다섯 개 언어로 편집된 찬송가를 펴냈고, 신학교도 곧 개교할 예정이다. 그저 돈이나 파송한 국가의 도움만으로 된 일이 아니라 발품과 땀과 기도가 더욱 깊이 스미어 이뤄진 일이어서 더욱 향기롭고 고운 꽃이란 생각을 했다.
뚜게가라오의 낯선 문화와 하나님께만 도움을 구할 줄 아는 사람 김자선 선교사의 만남은 아슬아슬하고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곧 출간할 그녀의 회고록 <그 왕을 위하여>(중앙M&B 펴냄)에는 그 숱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녀의 지난 세월을 읽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개에 물려 ‘안식’하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라굼.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 만한데 문제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 넓은 땅이 모두 화장실인데 뭣 하러 좁은 화장실을 짓나요? 그런 사람들과 살기 위해 그녀도 볼 일(?)이 생기면 나무 그늘이나 풀숲을 찾아야 했다. 자주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적게 먹고 조심했다. 그런데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결국 일이 터졌다. 일을 보고 일어서려는데 사나운 개들이 몰려들었다. 야성이 살아 있는 개들은 늑대 같았다. 물리쳤지만 달려들었고 한 놈이 다리를 물고 말았다.
피나고 퉁퉁 부은 다리로 교회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놀라 울었다. 저러다가 미셔너리가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태도, 그러니까 북한에서 온 무서운 여자라든지, 질투하고 시기한다든지 하던 데서 돌아서 가까이 그들 ‘안’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흘린 피도 사람들의 죄 사함을 가져오는 데 쓰이는구나, 퉁퉁 부은 다리가 나을 때까지 쉰 한 달이 그분의 휴식 명령이었구나….

#아 놀라운 당신의 보호

따북이라는 지역에서 전도하고 돌아오려면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했다. 반군게릴라가 출몰하는 위험지역이었다. 이곳을 다니기 위하여 오래 기도한 끝에 차 한 대를 마련했다. ‘절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탱크 같은 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빠라!” 일은 그렇게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찾아왔다. 차를 세우라는 소리였다. 우리는 세우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달리는 차 뒤에서 귀를 찢는 총성이 울렸다. 죽어라 달린 20분, 이번엔 앞에서 탱크가 가로막고 있었다. 또 돌진…그러면서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건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동행하던 깔루엥과 마리솔이었다. 그들을 위험한 지경에 내몰았다는 자괴감이 아팠다. 다시 앞을 가로막는 군인들의 포위망…, 어쩔 수 없이 멈추며 예의 그 ‘투정’으로 따졌다. “하나님이 뭐 이래!” 이럴 때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대드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반군이 아니라 정부군이었고, 가만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선 정부군을 동원하여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신 셈이었다. 선교사 하나 챙기시느라 군대까지 동원된 적이 있었던가? 탄식처럼 나온 감탄사, 아, 하나님 저를 그만큼 챙기시는군요.

#어미의 가슴으로…

여성 선교사, 그리고 독신 선교사…, 선교사들의 세계에서 이런 조건이 의미하는 불리함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안다. 무엇보다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지 못하는 여성 선교사의 아픔은 말할 수 없다. 특히 필리핀처럼 세례증이 출생증명서처럼 쓰이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저 하나가 살림의 전부인 집도 있는 가난한 뚜게가라오 사람들과 살면서 그들이 어서 예수 믿고 부자 되는 것, 그래서 제대로 사는 것, 옥수수가 아닌 쌀을 주식으로 삼는 것…, 그 광경을 보고 싶은 마음은 이제 그녀에게 어미의 가슴처럼 사무쳤다. 책임감 없이 결혼하고, 일 없이 놀고, 싸우고 살인하는 그들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예수를 믿어 그들의 무게를 깨닫는 일이라 여겼다.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 더디고 힘겹게 찾아왔다. 그러나 조금씩 사람들은 변하였고, 그들의 우상으로부터 놓여났으며, 일하여 삶의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들이 나타났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그녀는 처음처럼 늘 하나님의 힘을 구하고, 때로는 따지듯 하며 그 흐름을 일구었다. 인터뷰 시간 내내 웃음으로 늘 말하였지만 그 웃음이 오히려 무겁고 깊이 와 닿았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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