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정기용 씨는 ‘건축계의 공익요원’으로 불립니다. 서울대를 나와 파리에서 공부한 그의 건축 화두는 늘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짓는 일입니다. 10년째를 맞는 그의 ‘무주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정기용 표 프로젝트’입니다. 마을회관, 면사무소, 공설운동장, 군청, 재래시장, 청소년수련관, 곤충박물관, 향토박물관, 천문과학관, 농민의집, 된장공장, 보건의료원, 종합복지관, 노인전문요양원, 공설납골당, 버스정류장…. 서른 채에 달하는 공공건축물들은 모두 그의 생각과 손이 닿아 자식처럼 귀합니다.

무엇보다 그의 건축물은 땅과 산과 물과 사람과 하나가 되어 어우러집니다. 가령 땡볕으로 쨍쨍하던 공설운동장의 스탠드에는 등나무 그늘을 씌워 녹색 잔디,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게 하였습니다. 등나무 그늘을 끌어올 때 그는 등나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래 등나무들아, 내가 너희한테 집을 지어주마. 그러면 너희는 근사한 그늘을 만들어다오.” 이렇게 하여 무주군 안성면의 공설운동장은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면사무소(주민자치센터)에 처음 공중목욕탕을 넣은 사람도 그입니다. 목욕 한번 하려면 봉고차를 빌려 대전까지 오가던 마을 주민들이 이제는 일 마치면 면사무소에 들러 목욕을 하고 돌아가는 풍경이 생겨난 것입니다. 버스정류장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시선을 교차하게 만들어 관계를 놓치지 않도록 하였고, 벽에 구멍을 내어 뒤 풍경과 단절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정기용 건축물 박물관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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