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9월이 되어도 새로울 것이 없는 나날입니다.
신나는 일도 없고, 기대되는 일도 없습니다.
“만물이 다 지쳐 있음을 사람이 말로 나타낼 수 없다”는
코헬렛의 말이 너무도 실감되는 요즘입니다.

9월에 들어서면서
경제 위기를 예측하는 음성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환율이 급등하고,
무역 수지 적자 폭이 커지고,
유동성 위기가 거론되면서,
경기가 후퇴기를 지나 침체기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물가도 덩달아 뛰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서민들의 불안만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인력 시장에 나와
자기를 호명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성대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검은 실루엣을 볼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가
오히려 죄스럽게 느껴져 슬며시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그들의 가슴에 드리운 절망의 너울을 벗겨줄 이는 누구인지요?
가장 늦은 시간에 포도원에 들어온 일꾼부터 시작해서
똑같은 품삯을 지불했던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게 헤아려지는 요즘입니다.

주님,
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요?
스스로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아닌지요?
“만난다는 것은 서로 마주서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동의하고 손을 잡고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어느 랍비의 말에 무릎을 치는 것은,
진정한 만남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실존의 파리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모든 사람을 각자 다른 모습으로 창조하신 것은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되어주기 원하시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경쟁에 내몰리면서 우리는 모두 갑각류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골몰하느라
이웃들의 아픔을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주님,
국제중학교, 특목고, 자사고라는 이 낯선 말들을 아십니까?
행여 남에게 뒤질세라 선행학습에 내몰리는
아이들의 영혼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품부하신 본래의 빛을 잃고
파리해져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막혀 옵니다.
히말라야의 오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 천연의 얼굴과, 해맑은 미소는 바로 하늘이었습니다.
그 얼굴을 보면서 하늘을 잃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을 불구로 만듭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 깨끗한,
그리고 천진한 미소를 돌려줄 수 있는 길을 일러주십시오.
무정한 이 땅의 교육 풍토 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흘려 넣어주십시오.

주님,
이웃종교로부터 제기된 정부의 종교편향 문제는
심상하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자칫하면 이 상황이 더 큰 종교적 불화로 이어질까 두렵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가슴에 적대감과 분노를 쌓아가며,
평화와 사랑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의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는 세상,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을 허무한 것으로 규정짓지 않는 세상,
서 있는 삶의 자리는 다르지만,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함께 땀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열린 마음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오늘의 갈등과 고통이 이런 열린 세상을 향한
디딤돌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 아름다운 9월,
한가위를 향해 가면서 두루 원만해지는 저 달처럼
우리 마음이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해지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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