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뛰어넘다담의 문화, 벽의 시대“벽의 반대말은 해변이라고그녀는 말했다.해변은 무한이 열려 있는 곳이라고해변은 어디에나 있다고”- 시인 나희덕, 중시인 나희덕은 이 시대를 ‘벽(壁)의 사회’로 보았다. 벽은 ‘단절’이요 ‘분리’이다. 서로가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순간만큼은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단절과 둘 사이의 대화가 끊기는 소외가 발생한다. 시인은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오만과 독선의 벽에 갇혀 사는 이 시대에게 “벽의 반대말은 해변”이라고 일침하며, ‘무한히 닫혀 있는
특집 : 뛰어넘다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이자 홀로코스트 실무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그의 재판 광경을 보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박사가 가장 놀란 점은, 그가 평범하게 출세를 지향하는 공무원의 모습으로 던지는 언행이었다고 한다. 그는 체제에 충실해 그저 명령에 복종한 충직한 공무원이었다고 자신의 존재를 말하고 있었다.당시 나치 고위층은 유대인 학살과정에서 ‘언어 규칙’을 만들었는데, 유대인 수송은 ‘거주지 변경’이라 하고, 학살은 ‘최종해결책’, 가스실은 ‘의학적 처치’로 바꿔 말하고 있었다. 이런 비밀스러운 어법은 행위를 숨기려
특집 : 뛰어넘다사람을 사람으로한국의 슈바이처, 살아있는 성자, 바보 의사, 작은 예수 등으로 불리는 사람 장기려(1911~1995).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던 의사 (지강유철 지음, 꽃자리, 2023‧사진)이 세상에 나왔다.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아홉 쇄를 거듭한 작품이지만, 이번에 완전히 새롭게 단장했다.지은이는 장기려를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던 의사”라고 수식한다. 의사도 사람, 환자도 사람이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요즘 같이 사람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보는 세상 속에서는 이 수식어가 특별하게 느껴진
특집 : 뛰어넘다매년 국제여름학교 마지막 수업서 복음 전해마지막 수업에서 전하는 복음한 교수가 계절학기 마지막 수업, 25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나는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요. 물론 이 자리가 불편하다면 나가셔도 됩니다.”그리고는 전하는 복음. 처음 예수님에 관해 듣는 학생들도 있고, 들어는 봤지만 잘 모르는 학생들,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가는 학생들 모두가 있다. 하지만 힘주어 그는 말한다.“진리이신 예수님을 붙잡기를, 그 분이 생각나기를, 나는 바라고
‘재미, 쾌락, 흥분, 열정이 화려한 공격수 같다면 의미, 의지, 소명, 우정은 우리를 굳건히 지키는 조용한 수비수입니다. 정신과의사, 사회복지학자 그리고 심리학자 셋이서 조용한 것들의 힘에 대하여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내성적인 분들 환영합니다.’특별한 홍보문구가 눈길을 끄는 토크 콘서트가 지난 8월 17일 종로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열렸다. ‘조용한 것들의 힘’이란 주제로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센터장 최인철)가 주최한 제1회 마음 충전 토크콘서트로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별한 노래자리가 있었다. Lifehope기독교자살예방센터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최근 진행하고 있는 자살유가족 인식개선 순회포럼에서의 문화공연. 청중 가운데 다수는 사랑하는 가족을, 사랑하는 친구를 자살로 잃고 힘겨운 시간을 살아내는 유가족과 지인들이었다.“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 그러면 난 견디겠어~”- 노래 중에서가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절절하게 노래 부르는 이의 진심 때문이었을까, 청중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리를 지켰다.돌아보면 이렇게 삶의
“들소들이 뛰고 노루 사슴 노는 그곳에 나의 집 지어주오.걱정 소리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그곳에 나의 집 지어주오. 언덕 위에 집~ ”혜경 씨는 늘 듣는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중학교 때 꿈같던 기억으로 들어간다. 합창대회 때 70명이 한 마음으로 점심시간, 방과 후에 연습하던 일, 엇박자와 화음이 점점 맞추어지면서 드디어 멋진 하모니를 이루어 상까지 받던 일이 가슴 벅차게 올라오기 때문이다.세계적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이 “빠른 결과를 원하는 이 시대에, 긴 연습의 과정이 필요한 합창은 ‘시간’의 힘을 경험하게 한다.”고
특집 : 노래를 만났다전문 음악가의 길을 걷기까지1989년 창단, 국내 음악계는 물론 해외 합창 및 교회음악 권위자로부터도 세계적 수준의 합창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순수 합창음악과 교회음악의 진수를 선보여 온 서울모테트합창단의 박치용 지휘자(사진). 박 지휘자는 서울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재학 시절 서울음대콘서트콰이어의 지휘를 맡으며 지휘자의 길에 들어서서, 26세에 서울모테트합창단을 창립해 30여 년간 합창단을 이끌며 감동적인 하모니를 선보이고 있다.“유년 시절 풍금과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음악을 만났고, 큰형님의 어깨 너머로
주 발 앞에 나 엎드려 주만 간절히 원해주 계신 곳 나 바라봅니다근심 속에 주 찾을 때 모든 필요 내려놓고겸손하게 모두 드리리오직 예수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이유오직 예수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이유누군가 복음성가 를 부르면, 사랑하는 아들 태원이가 찬양 리더로 오른손을 치켜들고 열정적으로 찬양을 부르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하지만 그 신나고 밝았던 찬양의 곡조가 이제 나에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눈물의 찬양곡이 되고 말았다. 나의 큰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아들.2012년 7월 13
특집 : 노래를 만났다동요 만드는 신부동요를 만들고, 생명과 평화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신부가 있다. 부산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화명모두애교회 성요한 신부(사진). 음유시인처럼 기타 하나 메고 노래를 부르면 어디나 무대가 된다.“제 노래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평화가 그려진다고 할 때 기쁨이 있어요. 또한 교회 안에서 만날 수 없는 아이들을, 사람들을 노래를 통해 만나는 것이 좋아요.”환한 웃음으로 기타를 치며 복음성가가 아닌 동요와 생명과 평화의 노래를 작곡해 교육청, 지역아동센터나 도서관, 초등학교 등을 찾아가 아름다운 노랫말
특집 : 노래를 만났다창가, 넘어지다창가는 서양식 악곡에 맞추어 제작된 노래를 말한다. 구한말, 개항 이후 학교의 음악교육은 보통 이러한 노래를 배우는 창가 시간이었다. 대체로 한 주에 세 시간으로 구성된 이 수업은 전문적인 음악교사의 지도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틀림없이 어린이들이 노래를 배우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배움과 앎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애국창가를 부르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고, 동요를 부르며 또래와 마음을 나누었으리라.그러나 1910년 일제의 강제 침탈로 인해 교육계도 판도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서양음악과 근대시, 신
일러스트=초록담쟁이“용서하라고 하는 말들이 더 힘들었습니다. 자기가 그런 일을 겪었어도 그렇게 말할까요? 왜 그렇게 쉽게 얘기할까요?”아픈 일을 당해, 여전히 아픈데, 그 이야기를 어렵게 나누자 바로 사람들이 “잊어버려, 안 그러면 너만 손해야”, “그래도 용서해야 하지 않아?”라는 말들을 너무 ‘빨리’ 충고한 것이 그를 더 힘들게 한 이유였다.상대방이 그 상처를 감내해 온 시간과 서사 모두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즉각적이고 기계적인 충고는 너무나 가볍게 용서를 요구한다. 과연 용서의 무게를 우리는 제대로 가늠하며 누군가에게 충고하
마음을 알고 싶고, 진솔한 말이 듣고 싶어혜경 씨는 아흔이 넘은 엄마가 약해지셨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비행기 표를 샀다. 맑은 정신에 엄마와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였다. 아니,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 혼자 용기를 냈다. 두 해 전보다 퍽 작아진 엄마는 옷들과 물건을 단출하게 정리한 모습으로 맞이하고는, 몇 날이 지나는 동안 고향 이야기를 행복하게 이어갔다. 그러는 사이사이 혜경 씨도 나누고 싶은 주제를 꺼내보았지만, 이미 엄마의 기억에서 접은 듯 제대로 얘기되지 않았다. 늦은 거였다.두 주 만에 돌아오며 스스로 물었다. ‘그토록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용서하셨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영화 주인공의 대사 중에서용서하고 싶어도‘용서의 무게는 무겁다. 자신의 인생에서 그 무게를 덜어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살기 위해 서울에서 시골로 거처를 옮긴 한 여자(전도연 분).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면서 주변 사람에게 남편 없는 여자라고 무시당하기 싫어 돈이 많은 척 연기를 하는데, 어느 날 아들이 유괴를 당한다. 그리고 유괴범에게 줄 돈이 없었던 그녀는 결국
반성, 사죄, 그리고 용서. 이 셋은 하나의 묶음으로 이어질 때 완전해집니다. 반성하지 않으면 사죄할 수 없고, 사죄하지 않는데 용서할 순 없는 겁니다. 반성 없는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사죄는 거짓이며, 사죄 없는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용서는 회피이지요.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함께 할 때만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성과 사죄, 그리고 용서는 인간관계 속에서 제일 힘든 문제라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참된 반성과 사죄가 있다 해도, 반드시 용서가 따라붙는 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접근하기 어렵습니다.반성과 사죄가 가
두 가지 용서 이야기“불완전한 인간을 만든 신의 애프터서비스는 용서다” - 시인 함민복불완전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라 그런가. 우리 사회에는 용서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잘못에는 그 사회가 암묵적, 또는 법적으로 합의한 경중의 차이가 있다. 용서할 수 있는 수준의 잘못과 그렇지 않은 잘못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잘못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용서 그 자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고 있다. 철학자 자끄 데리다는 에서 무조건적인 용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용서할 수 있는 잘못에 대한 용서는 참된
일러스트 = 초록담쟁이가족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난 도대체 왜 이러지?’, ‘저 사람은 대체 왜 그런 걸까?’를 묻던 이들이 자신과 타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원인 가운데 ‘가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힐링’에만 관점을 두던데서,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으려 노력한다.“제가 여행 갈 때 거의 이민가방 들고 가듯이 준비하거든요. 남편이 사서 쓰면 된다고 해도 불안해서 못 그래요. 두루마리 휴지까지 들고 가곤 하니까요. 안 그러고 싶은데.”한 여성이 자신의 고민을 드러냈다. 상담자와 함께
특집 : 가족을 공부하다형제자매 5명이 몇 년 만에 만났다. 호주, 캐나다에서 오빠들이 방문해 며칠을 함께 하니,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어릴 적 얘기들이 오고 갔다. 부모가 안 계신 자리에서의 만남은 더 자유롭고 진솔했다.그중에서 서른 살 이후, 30년 넘게 타국에서 살아온 쌍둥이 오빠들의 서로 달라진 삶의 모습은, 마치 하버드 대학의 ‘생애 연구 프로젝트’처럼 중간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거의 같은 조건에서 태어나 비슷한 생김새, 대학 전공과 친구들도 겹치는 쌍둥이 오빠들의 삶이, 그 세월 동안 비슷하지만 다르게 진행돼 있었
특집 : 가족을 공부하다가정도 때로 위태로울 수 있다천적(天敵)으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새들은 둥지에 알을 낳는다. 부화된 어린 새들은 성조(成鳥)가 되기까지 둥지 안에 어미 새의 양육을 받는다. 어린 새가 자라는 둥지를 ‘보금자리’라고 한다. 사람의 보금자리는 ‘가정’이다. 사람은 가정의 부모로부터 ‘사람됨의 조건’인 예의와 배려와 의무와 책임과 같은 도덕성을 학습 받고 더 나아가 수준 높은 삶을 위해 필요한 지성과 영성을 체득한다.문학사에 빛나는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들, 곧 샤롯 브론테의 , 에밀리 브론테의
특집 : 가족을 공부하다건강한 가족의 필요충분조건은 사랑이다. 가족을 가족으로 묶는 힘은 이익이나 가치, 신념이 아니라 ‘사랑’이다. 건강한 가족의 사랑은 어떠한 상태로 고정되지 않는다. 사랑의 힘으로 구성원 개인과 가족 공동체가 함께 성숙하는 과정을 삶으로 살아낸다.그런데 성숙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는 변화이기에 ‘갈등’을 수반한다. 그러니 건강한 가족은 언제나 가족 내에 의미 있는 갈등이 발생하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갈등이 해결되는 관계의 역동이 지속된다. 갈등이 얽히고 풀리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