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서비스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패드에서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 M을 실행시킨다. 내 서재에서 ‘읽고 있는 책’ 중 하나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오디오북을 들으며 잠에서 현실로 넘어온다. 책 친구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책 팟캐스트에 합류하여, 한 달에 한 번 팟캐스트를 녹음하는데, 이번 달 책이 <명상록>이다. 다양한 번역본이 있지만 우리는 최근에 번역된 한 출판사의 책을 읽기로 정했다. 마침 그 책을 가지고 있어 읽다 보니, 최근 번역본이어도 고대 철학책을 독해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혹시나 하고 구독하고 있는 전자책 서비스를 검색해 보니 다른 출판사의 <명상록>도 있어 함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하는 책이어서, 가지고 있는 책은 눈으로 ‘읽고’ 전자책으로는 ‘들었다’. 같은 책을 다른 번역으로 두 번 읽은 셈인데, 한 번은 읽고 한 번은 듣는 방식으로 경험했다. 그렇게 열두 챕터로 이루어진 책을 하루에 한 챕터씩 열하루 동안 들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의 기쁨을 누리는 열흘 남짓의 시간이었다.

사실 전자책 서비스를 구독할까 말까 오래 망설였었다. 내가 찾는 책의 종류를 어느 정도나 소장하고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태블릿이나 노트북 화면으로 책을 완독(!)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전에 전자책으로 책 한 권을 완독한 적이 있었는데, 종이책을 읽을 때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는 방식이 낯설었고, 정말 이 책을 다 읽은 게 맞는지 스스로 의심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기보다 구입하는 속도가 빠른 책 컬렉터이다 보니 집에 더 이상 책 놓을 공간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내 방을 넘어 집 안 구석구석 책들이 쌓이면서 가족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버렸다.

책을 정리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더 이상 종이책을 사면 안 되는데, 심한 압박을 느낀 끝에 전자책 플랫폼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구독한 전자책 플랫폼에는 내가 찾는 ‘자료로서의 책’이 생각보다 많았고, 신간도 풍성했다. 정기구독하던 문예지까지 서비스하는 걸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안 그래도 잡지 덕후인 나는 다종다양한 잡지를 구독하는데, 매달 쌓여가는 잡지의 증가량(?)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일단 전자책 서비스를 해주는 잡지는 구독을 취소했다. 그뿐 아니라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 전자책으로 볼 수 있는 책들은 조금씩 골라내어 정리하기로 했다. 전자책 서비스에 올라온 책들은 영구 보관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계속 소장하고 싶은 책들은 전자책으로 볼 수 있어도 남겨두자는 기준을 세웠다. 그렇다 보니 아주 많은 책을 정리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새로 구입하는 종이책의 양이 줄어든 건 확실했다. 자그마한 수확(?)이었다. 여전히 종이책을 많이 구입하는 편이지만 이제는 책을 사기 전에 꼭 전자책 서비스를 먼저 검색하고 한 번 더 신중하게 읽을 책을 고르고 있다.

전자책 세계에는 책 보관 공간 해결보다 더 큰 유익이 있었는데, 그건 ‘즉각성의 기쁨’이라 부를 수 있겠다. 누군가 추천한 책 혹은 지금 바로 읽고 싶은 책을 전자책 플랫폼에서 다수 만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기쁨이었다. 도서 팟캐스트를 듣다가 추천받은 책을 검색했는데, 플랫폼에 책이 있어 바로 다운받아 읽었을 때의 환희란! 어떤 책을 ‘읽고 싶은 순간’에 바로 읽으면 그 어느 때보다 책 내용이 내 안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을 아시는지.

무엇보다 특정 주제에 관심이 생겨 여러 방식으로 검색해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니 기존에 종이책만으로 자료를 다루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볼 수 있는 자료의 폭이 넓어졌다. 나처럼 궁금한 게 많고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많으며 여러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전자책 플랫폼은 옛 것과 새 것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든든한 곳간이 되었다.

아침에는 철학을 들으며 시작했지만, 밤에는 미스터리를 들으며 보내고 있다. 왜 겨울만 되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이 떠오르는지. 마침 전자책 서비스에 ‘미스 마플’ 시리즈 오디오북이 있어 밤마다 즐겁게 들으며, 긴긴 겨울밤을 채우고 있다. 살인과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지만 ‘악’과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는 안락의자 탐정 미스 마플 덕에 겨울밤이 심심하지 않다.

박혜은

질문하는 사람. 책과 사람 잇는 일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 현재는 뉴스레터 에밀앤폴M 발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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