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량포구 해돋이.
마량포구 해돋이.

생활여가연구소 옥성삼 소장이 소개하는 묵상하기 좋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걸을 만한 공간을 소개한다. 전국 곳곳에 숨겨져 있는 귀한 ‘이야기’가 있는 곳을 다니다보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여가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 <편집자 주>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미디안 광야의 지혜자가 오늘 이 땅에서 새해를 맞이한다면, 수평선이 보이는 마량포구와 해변 그리고 동백나무숲을 거닐며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을까? 늦지 않았다. 연말의 분주함으로 미쳐 새해를 꿈꾸지 못했다면, 하루쯤 마량포구를 찾자. 탁 트인 포구의 차가운 해풍과 햇살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초조함의 그 무엇을 날려 보낼지도 모른다.

서해 바다로 툭 튀어나온 모양이 말머리를 닮아 마량(馬梁)이라 했고, 남동쪽으로 길게 반월형으로 이어진 띠섬목해변까지 연결하면 입을 크게 벌린 하마 같다.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홍원항과 춘장대해변이, 동으로 해방 전후기의 낡은 풍경을 만나는 판교 그리고 남으로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5대 갯벌에 속하는 서천갯벌이 장항까지 73km에 달한다.

서해를 따라 북상하는 뱃길의 요충지면서 선박이 정박하기 좋은 이곳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왜구의 노략질이 잦았다. 조선시대는 수군의 군영이 세워져 도둔곶(都屯串)이라 했고, 1419년(세종1년)에는 50여 척의 왜선이 도둔곶(마량진 안쪽)에 몰려와 일대 격전을 벌인 전장이기도 하다. 마량포구가 번성한 것은 1655년(효종 6년)에 남포(장항)에 있던 군항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진성을 쌓고 수군첨절제사가 담당하면서부터다. 지금은 마량진성의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첨사터라 부르는 곳에 오래된 정자나무 두 그루가 옛 군항의 터무니임을 말해준다.

마량포구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밀레니엄 전후다. 당진 왜목마을과 마량포구가 해넘이와 해돋이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이들이 이곳 송구영신 축제에 참여한다.

성경전래기념관 

다음으로 마량진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전래지로 부상하면서 지자체가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2016년 ‘성경전래기념관’을 개관하고 야외공원을 조성하면서 국내기독교유산탐방지로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1816년 9월 4일 두 척의 영국 군함이 마량진 해상으로 들어와 조대복 첨사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진 성경과 동일한 ‘킹 제임스 바이블’ 1611년 초판본을 지자체가 구입해 전시함으로 전시관의 가치를 높였다. 더불어 마량포구로 들어가는 언덕에는 1902년 어청도 인근에서 선박 충돌사고로 순직한 아펜젤러를 기념하는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이 2012년에 세워졌다.

동백나무숲
동백나무숲

마량포구의 세 번째 매력은 포구의 서쪽 언덕 너머에 있는 500여 년 된 동백숲이다. 숲 정상에 세워진 동백정에서 서해로 넘어가는 낙조도 장관이지만, 한겨울 흰 눈을 맞으며 하나둘 붉게 피고 지는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3월에 붉은색 꽃이 만개하는 마량진 춘백(春栢)의 전설은 뱃길의 안전기원, 난민가족의 비극 그리고 바닷가 할머니의 애환 등 갯마을의 고달픈 냄새가 배어있다. 마량포구에는 봄 주꾸미와 가을 전어 축제 혹은 해넘이와 해돋이 축제도 좋지만, 아무 행사도 없는 1월의 어느 하루가 좋다. 썰물이면 선도리갯벌체험마을 앞 갯벌에서 쌍섬과 할미섬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할미섬 끝에는 V자 형태로 돌담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고기를 잡던 독살이 남아 있다.

일상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축젯날이 더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텅 빈 춘장대해변의 고적함이 숨은 용기를 일깨우고, 할미섬에 감춰진 V자 독살이 힘찬 응원가로 가슴을 두드릴 수 있다. 마량진 동백숲을 오르며 흰 눈 속에 핀 붉은 동백꽃을 찾으며 소리 없는 함성으로 새해를 시작하자.

사진=서천군 홈페이지 / 옥성삼

옥성삼

생활여가연구소 소장으로 서울 골목길 순례 등 여가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이다. 저서 및 공저로 <왜 조선교회는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가>, <디지털시대의 교회와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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