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살예방센터 김주선 국장, 자살예방 위해 걸었다

사진 맨 왼쪽이 김주선 국장, 임종수 목사가 선물해준 티셔츠를 입고 참가자들과 함께 걸었다. 
사진 맨 왼쪽이 김주선 국장, 임종수 목사가 선물해준 티셔츠를 입고 참가자들과 함께 걸었다. 

특집 : 예의와 무례 사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는 자살. 하루 36명, 1년이면 1만3천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그런 현실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귀한 생명이 스러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걷기 캠페인을 해보자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lifehope.muv.kr, 대표 조성돈 교수) 국장 김주선 목사는 자살률이 높은 도시를 중심으로 걷기 캠페인을 하면서, 그 도시를 지날 때마다 SNS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 등 정보를 포스팅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면서 걷기에 동참하는 이들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반향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도시를 짚어 연결해보니 37개 시와 군을 지나 부산에서 서울까지 연결되었다. 실제로는 더 걸었지만 처음 계산한 거리는 20일 동안 498km를 걷는 것이었다.

“일주일 고민하며 가족과 동료들에게 알리고 바로 걷기 훈련에 들어갔어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했지만 가족들은 안전하게 다녀오라고 격려해주고 함께 걸어주었지요.”

준비를 위해 시작한 훈련

3월부터 기초체력훈련을 하고, 5월부터는 이틀에 한 번 10km씩 걸었다. 하루에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20일 동안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을지 시간을 재고 따져보았다. 노르딕 워킹, 고관절 걷기 강의를 듣고 연습을 했다.

이후 사람들에게 최소 2시간, 10km를 함께 걸어달라고 요청했다.

“염려하는 분들 중 정말 좋은 생각이라며, 바로 격려해주신 두 분이 계셔요. 등산장비업체를 운영하시는 강석우 장로님이 걷기에 관련한 모든 장비를 지원해주셨고, 큰나무교회 임종수 원로목사님은 그림을 직접 그려 티셔츠 80장을 제작해 선물해주시며 두 번이나 함께 걸어주셨어요. 임 목사님께서는 여든이 넘으셨으니 최고령 참가자셨지요. ”

뚜껑을 열고 보니

9월 7일 부산역에 가보니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함께 걷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10명으로 시작한 걷기는 시간, 지역마다 가변적으로 사람들이 합류를 하였고, 연인원은 예상 인원보다 4배 정도가 많은 200여 명이었다.

토요일마다 내려와 걷는 사람, 커피를 사주는 사람들, 발에 물집 잡혀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약을 가지고 오는 사람, 못 걷지만 그냥 응원하러 오는 처음 보는 사람들. 부모와 자녀가 같이 오기도 했고, 교회에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함께 걸으러 오기도 했다.

의미 있는 것은 걸으면서 사람들과 계속해서 자살에 관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던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각자의 SNS에 자살예방번호 1393과 #우리가 돕겠습니다 #살릴 수 있습니다, 그 지역 자살예방센터,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전화번호와 함께 올리도록 했다.

마음을 열다

“사실 페이스북 중심으로 올린 것은 페이스북 사용자 중 중장년 남성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0~60대 중장년 남성의 경우에는 정서적으로 방임상태인 경우가 많아요. 그 어느 곳에서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분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어요.

마침 이 포스팅을 보고 중간에 함께 걷겠다고 합류하셨던 중장년 남성분들이 많으셨어요. 가게 문을 닫으면 하루 손해가 큰데도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왔다며 함께 걷는 분들이 계셨어요. 자살, 생명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니 그동안 어디에서도 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속 깊은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으셨습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구나’라는 자각은 새로운 시각을 열게 해주었다고 고백해왔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이제 전국구 친구를 갖게 되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후 웃을 수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자살유가족들과 걷는 시간도 있었다. 일부러 하루 종일 유가족들과만 걷는 시간을 가졌다.

끝까지 씩씩하고 명랑하게

“걷기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면 빨래하고, 매일같이 페이스북에 사진과 글을 올렸어요. 힘든 이야기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자제하고, 끝까지 한 방향으로 씩씩하게, 명랑하게, 건강하게 해야 한다 싶었어요.”

9월 7일부터 27일까지 무더위와 폭우 속에서 씩씩하게 걸었다. 매일 옷에 소금이 서걱거리고 화장실 없는 길이 많아 물도 잘 못 마셨으며, 전체 일정에 1/3은 인도가 없었다. 계획했던 498킬로미터는 578킬로미터로 늘어났다. 터널에 들어가니 운전자들이 놀라는 것 같아서 터널을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사히 서울에 도착한 날, 생각해보니 무릎이 아팠던 날이 없었음을 알았다. 더 놀라운 것은 물집 하나 생긴 적이 없었다는 것도 생각났다.

“진짜 하늘을 날듯이 하나님이 걷게 하셨어요. 두 다리가 있어서 걸었고, 할 수 있는 것이 걷는 것밖에 없어서 걸었는데 이 일을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해에는 강원도나 전라도 쪽을 걸어볼 예정이에요.”

끝까지 씩씩하고 명랑하게 마칠 수 있었서 감사했다.

“왜 이렇게 하냐고요. 안 괜찮았던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아팠던 사람들, 잃어본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게 됩니다. 자살유가족이나 어려운 이들을 도울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입장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괜찮은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해보면 좋겠어요.”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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