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워 킬링 문〉

오세이지 부족은 미국 중동부 오하이오 강 주변의 풍요로운 대지에서 2000년 이상 살아왔던 아메리칸 원주민(속칭 인디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 정부에 의해서 북미대륙 한복판에 있는 오클라호마의 척박한 땅으로 강제 이주됩니다. 그런데 고향 땅을 등지고 물도 없는 낯선 곳에 내몰린 그들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1890년대 중반쯤,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석유가 터진 거예요. 급기야 오세이지 부족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집단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오히려 백인들이 그들 밑에서 일하고, 그들은 백인 하녀와 운전사를 두고 생활할 정도가 되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오세이지 부족이 그렇게 부자가 되었지만, 그들의 재산을 그들 맘대로 쓸 수 없게 미국 정부가 막아놓았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경제관념이 약할 거라는 차별적 시선이 만들어낸 제도 때문인데, 그들이 돈을 쓰려면 반드시 백인 후견인의 도움을 받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 오세이지 부족 근처에 그들의 부(富)를 노린 백인들이 몰려들게 됩니다. 그래서 백인 남자들 사이에선 오세이지 여성과 결혼하여, 아내의 부를 건네받아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려는 시도가 늘어납니다. 특히나 오세이지 부족은 백인들의 식습관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당뇨병이 만연하여, 평균 수명이 무척 낮았거든요. 그래서 원주민 아내가 일찍 죽으면, 그녀의 재산은 고스란히 백인 남편에게 상속되어, 오세이지 부족의 부는 점차 백인들에게 넘어가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플라워 킬링 문>의 주인공 어니스트는 1차 대전 참전용사로 별 능력 없는 한량이지만, 그 또한 오세이지 여성 몰리와 결혼하여 부를 거머쥡니다. 다른 여타 백인 남자와 달리, 어니스트의 몰리에 대한 사랑은 순수했었습니다. 하지만 일찍이 오세이지 부족 근처에 머물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삼촌 윌리엄 헤일과 어울리며 타락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마침 그때 오세이지 원주민들만 연이어 죽는 사건이 터집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모두 흐지부지 덮어져요.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은 1920년대에 있었던 이 오세이지 원주민 살해 사건을 그리며, 미국 백인 사회의 민낯을 까발리고 있습니다. 10여 년 동안 오세이지 원주민 100명 가까이가 희생되었는데, 이 모두가 그들의 부를 노린 여러 백인의 계획적인 범행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당시에 이런 백인들의 악행이 비단 오세이지 부족에게만 행해졌던 건 아닙니다. 오세이지 원주민 살해 사건이 한창 이어지던 1921년, 오세이지 부족 거주지 바로 옆에 있는 털사(Tulsa)시에선 백인 폭도들이 이틀 동안 흑인 수백 명을 죽이고, 흑인 가옥 천여 채를 방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오클라호마 털사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흑인 부자들이 유독 많이 살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심지어 ‘블랙 월스트리트’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흑인 중산층과 백만장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거길 백인들이 습격하여 폐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털사 인종 학살로 법의 심판을 받은 백인은 거의 없습니다. 오세이지 원주민 살해 사건 또한 처리 결과가 매우 씁쓸합니다. 원주민 살해 주범 윌리엄 헤일은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도중에 가석방되어, 이후에 목장을 운영하며 잘 살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어요.

<플라워 킬링 문>의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1942년생)는 지난 50년 동안 수많은 걸작을 내놓으면서, 미국 사회에 짙게 깔린 백인 신화를 신랄하게 비판해 왔습니다. 그가 바라본 미국은 돈과 탐욕, 질투와 욕망이 이글거리는 자본주의의 정글 그 자체입니다. 물론 그걸 주도하는 건 백인들이지요. 자기들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소유해야만 한다는 선민의식과 우월감이 타인에 대한 혐오와 질투로 이어지는 걸 스코세이지는 명확히 보여줘 왔습니다. 주류 백인들 속내엔 “어디 감히 네가? 인디언이? 흑인이? 아시아인이?”라는 오만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스코세이지 감독 영화의 백인들은 한결같이 편집증· 과대망상 환자들로 그려집니다. 자의식에 도취되어 짐승과 문명인의 경계를 오가는 건 일상다반사고, 때론 아무 생각이 없어,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른 경우도 많습니다. 이 정도 되면 무지한 것도 죄라는 경구를 넘어 ‘악하다’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오세이지 부족은 5월을 ‘플라워 문(flower moon)’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건 ‘꽃이 피는 달’을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죠. 정확히는 ‘꽃을 죽이는 달(flower-killing moon)’이라는 뜻으로, 5월에 크고 왕성한 꽃들이 활짝 만개하면서, 이전 달에 피었던 작은 꽃들을 수없이 많이 죽인다고 그렇게 불렀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화려한 문명 이면엔 그렇게 수많은 약자의 죽음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맨 마지막에 감독 자신이 직접 출연하여, 미국인들은 그 수많은 약탈적 범죄와 희생자를 삭제해 왔다고 꼬집습니다.

그런데 이게 태평양 건너 먼 나라만의 이야기일까요? 지금도 대한민국 산업현장에선 하루 평균 2명씩 죽어 나가고 있음에도 우린 모르고, 또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번영과 안위의 이면에 짙게 드리워진 우리네 현대문명의 또 다른 그림자인 게지요. 빌라도가 손 씻는다고 모면할 수 없었듯이, 우리가 모른다고 면피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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