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등대〉

ⓒ 『안녕, 나의 등대, 소피 블랙올 글·그림, 비룡소

“영도 등대가 바다의 오래된 이야기를 해준다”는 이동언 건축학 교수의 표현처럼, 모든 등대는 바다를 찾는 이들에게 바다와 인간이 함께 살아온 세월을 속삭여 줍니다. 수평선 위로 우뚝 솟은 등대는 바다 풍경과 어우러져 바라보는 이들에게 낭만을 선사해 주기도 합니다. 빛의 집(light house), 등대가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를 그림책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낮에 고래 풍향계를 달고 있는 빨간 지붕의 등대가, 파도 속 작은 바위섬에 우뚝 서 있습니다. 등대는 오랜 세월을 견디며 어두운 밤바다의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합니다. 등대는 해가 질 때부터 새벽까지 불을 밝히며 이야기합니다. “여기예요! 여기예요! 여기 등대가 있어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굳게 서 있는 등대의 모습과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하는 바다의 역동적인 무늬는 대조적으로 표현됩니다.

어느 날 이곳 등대에 새 등대지기가 왔습니다. 그는 렌즈를 닦고, 연료통에 석유를 채우고, 램프 돌리는 태엽도 감아두며, 정성껏 일을 합니다. 밤이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업무 일지에 기록하고는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병에 담아 파도에 띄워 보냅니다.

어느 날, 저 멀리 보급선이 음식과 석유를 싣고 등대가 있는 섬으로 왔습니다. 보급선은 그리운 아내도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귀여운 아기도 태어났답니다. 그렇게 등대지기의 가족들은 등대 안에서 등을 밝히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때론 뱃길을 지나던 배가 풍랑에 난파될 때 등대지기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선원들을 구출해 냅니다.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등대지기를 보지 못합니다. 단지 등대에서 비추는 빛을 따라 밤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할 뿐이지요. 늘 그 자리에 등대가 있기에, 사람들은 밤마다 어두운 뱃길을 비추는 빛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는 등대지기의 모습은 등대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안경비대원들이 와서 등대에 전구로 빛을 내는 새 기계를 달았습니다. 더 이상 등대지기가 석유로 불을 밝힐 필요가 없어지자 등대지기의 가족은 등대를 떠납니다. 하지만 등대지기의 가족에게 있어 등대는 너무 소중합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등대 속에서 빛을 내던 하루하루는 등대지기의 삶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등대지기 가족은 등대가 저 멀리 보이는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며 등대를 바라봅니다. 등대 뒤로 노을 지는 석양의 고운 빛깔과 등대에서 나오는 노란 불빛은 바다 건너 빨간 지붕 집에 인사를 건넵니다.

“여기예요! 여기예요! 여기 등대가 있어요!”

등대지기의 작은 집에서 나오는 불빛이 등대를 향해 화답합니다.

“안녕, 나의 등대야.”

등대지기의 삶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세상은 어둠이 가득합니다. 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서는 빛이 비춰져야 합니다. 빛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작은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뭔가 거창한 일을 해서 빛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등대지기처럼 맡겨 주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일 겁니다.

박혜련

더샘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기독교문화연구소-숨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문화 변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림책 읽기를 통해 세대와 세대 간에 아름다움과 미덕이 전수되길 꿈꾸며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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