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전도사의 간증

김○○ 전도사는 북한군인 출신으로, 중국으로 탈출해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신앙을 갖게 되었다.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현재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북한을 위해 여전히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한 교회에서 나눈 간증을 정리하여 2회에 걸쳐 낸다. <편집자 주>

한국에 와서 맞게 된 첫해 추석날이었습니다. 고향을 찾아가듯이 그날 저는 북한 땅이 보인다는 도라산전망대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종착역인 문산역에 거의 도착할 즈음, 한 소녀가 아빠한테 이렇게 묻습니다.

“아빠, 전망대에 가면 빨갱이들을 볼 수 있나요?”

순간 심장이 떨렸습니다. 그 ‘빨갱이’라는 말이 마치 나를 겨누고 날리는 화살 같아 죄지은 사람마냥 뒤로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아빠는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그럼, 잘 보이지. 빨갱이들이 자전거도 타고, 걸어도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지.”

그렇습니다. 그 소녀가 말하던 빨갱이가 바로 저였던 것입니다. 일반 주민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 나라를 총으로 지키며 살았던 조선로동당원이었으며, 군인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어린 시절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배운 것이 “우리의 아버지 김일성 대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수령님의 은덕이고 사랑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그분에게 늘 고마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 세뇌 과정 속에서 저는 우리나라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이고, 그런 나라를 세워주신 우리의 위대한 수령님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았으며, 또 그 나라를 외세로부터 지키고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여 년이라는 군 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굶어죽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황폐해가는 북한의 현실을 바라보게 되며 이 사회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사회이며,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됩니다.

이 사회체제 통제를 벗어나 중국에 가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해 여름, 강을 건너 중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리라 생각하십니까. 그저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닌 자신이 태어나 살아왔던 고향과 조국을 떠나 강 건너 남의 나라 땅에 불법으로 발을 들여놓기로 하는 그 가슴 아프고, 두려운 심정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나 공포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나서 자란 고향과 조국을 이렇게 떠날 수밖에 없음에 ‘슬픈’ 생각이 엄습했습니다(그래서 지금도 푸짐한 밥상에 앉아 밥을 먹다가 떠나온 고향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목이 메어 밥술을 놓고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바로 그 비통한 마음을 체험하며 강을 건너 중국이라는 낯선 이국땅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희망을 찾아 서쪽으로 걸었습니다. 어디에서 오라는 사람도, 어느 곳에서 만나자는 사람도 없던 그 길을 걷는 것은 모험이라기보다 목숨을 건 무모하기 그지없는 큰 도박과도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갈 곳도 모르고, 오라는 사람도 없는, 어리석고 절망적인 처지였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저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직 서쪽으로만 가면 중국의 어느 한 대도시에 들어설 것이며, 그곳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미래를 찾을 것이라는 생각, 그 희망 하나로만 가는 길은 천고의 밀림으로 들어찬 그 험한 장백(백두산) 밀림 속에 마치 동화 속의 요지경처럼 빠져 나올 수 없는 미로였습니다.

혹시 하며 도움을 받고자 기대하고 들어갔던 중국인의 첫 집에서 냉대와 함께 신고를 받아 출동한 공안에 쫓기고 나니 다시는 사람을 만날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더욱이 산간 마을 어귀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우리 같은 탈북자들을 만나면 무조건 신고하라는 내용이 써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산속 깊은 길로만 가게 되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마치 들개처럼 걷다가 또 비를 맞고, 그렇게 가다가 나무 밑에서 젖은 옷 그대로 입고 자고, 그러기를 열흘이 지나도록 계속 반복해도 기대했던 도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중국에 들어온 지 12일째 되던 날,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그 비에 흠뻑 젖어 떨면서 힘겨움에 지쳐 걸어가던 저에게 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죽자고 생각하니, 제 몸과 정신이 그 죽음을 얼마나 편안하게 받아들이던 지요. 아마 조금만 더 갔어도 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흔히 이런 절망 속 상황의 경우, 많은 사람들의 간증들을 들어보면, 갑자기 음성이 들리는 등 특별한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반항을 한다는 심정으로 두 시간 길을 되돌아 밤에 지나쳤던 어느 한 외진 곳의 중국인 농가 문 앞에서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른 아침, 집 밖으로 나온 중국인 남자, 얼마나 놀랐을까요. 몸짓, 손짓으로 사정을 알렸습니다. 그리고는 몇 주 만에 집안에서 따뜻한 밥을 먹게 됩니다. 그 중국인의 도움으로 비로소 아무리 가도 그 끝이 보이질 않을 것 같던 미로, 그 징글징글한 장백의 밀림 속을 빠져 나오는 버스를 타게 됩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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