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이었다. 그 밤에도 여전히 보일러는 집을 따뜻하게 데웠다. 당연했다. 이불을 발로 차며 잘 잤다. 당연했다. 이른 아침 기지개를 켜며 베란다 창 너머에 시선이 갔다. 당연히 겨울나무들이 죽은 듯이 서 있었다.

문득 ‘세상엔 당연함이란 없는 건데’라는 생각으로 나무를 보았다. ‘저 나무들은 얼마나 추울까?’ 그리고 한 줄 생각을 보탰다. ‘살아내려(자기를) 버티고 있구나!’ 잠시 후 생각을 고쳤다. ‘살려내려(세상을) 견디고 있구나!’

‘나무는 성자 같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성자는 나무 같다’가 맞는 것 같다. 성자는 “제 살려고”가 아니라 “누군가를 살려내려고”이기 때문이다. 그런 성자들이 사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다. 누군가의 글이 생각난다.

“좋은 일, 좋은 사람, 좋은 삶을 만나려면 간단한 준비물이 있다. ‘좋은 나’.”

‘좋은날풍경’이란 이름으로 노래 길을 떠나온 지 올해로 20년째가 되었다. 음악엔 쉼표가 있고, 그림엔 여백이 있고, 문장에는 행간이 있듯이 20년을 맞이한 이 시점에 나를 돌아봄이 절실하다. “익숙해지면 소홀해진다”는 말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지인들의 나에 대한 익숙함도 그리고 노래하는 일과 삶의 모양 하나하나에도 어느새 익숙함으로 인한 낡아짐을 본다. “과거에서는 교훈만 얻으라” 했던 공자의 말처럼 그런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마음을 다지고 다가올 십 년을 내다보고 싶다. 혹자의 말처럼 기독교는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는 거라던. 그런 의미에서 지난겨울 아침에 만난 겨울나무의 정신을 가진 참 좋은 나로 거듭나고 싶다. 그리고 더욱 성숙한 아버지의 자녀이고 싶다.

“기도는 내 일에 신이 응답하는 게 아니라, 신의 일에 내가 응답하는 것이다.” (조정민 목사)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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