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서공회가 펴낸 <대한성서공회사>에는 성경이 이 땅에 전해진 경위, 즉 번역과 전파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8도선 이남으로 북한 군대가 내려오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불과 나흘만인 6월 28일에 서울이 점령되었고, 대한성서공회도 폭격에 의해 전소되었다. 그 안에는 개정을 앞두고 있던 성경 원고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성서공회 총무였던 임영빈이 김치 항아리에 1차 원고를 보관해 두었기에, 서울 수복 후 원고를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구한 원고를 임시 회관에서 작업을 이어가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부산행 열차에 실은 임 총무의 트렁크가 사라져 버린 것. 그러나 이번에도 원고는 살아남았다. 당시 미국성서공회 총무에게 보낸 임 총무의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나는 성경 수정 원고를 트렁크 속에 넣어두었으나, 마지막 순간 화물을 보낼 때 원고를 트렁크에서 꺼내어 작은 손가방 안에 넣었습니다. 무심코 그렇게 한 덕분에 트렁크는 잃어버렸지만 원고는 손가방에 남았습니다. 그 원고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역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임 총무의 손에 들린 원고는 일본으로 건너가 쪽복음으로, 그리고 한창 전쟁 중인 1952년 9월에 부산에서 대망의 “한글판 성경”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1939년에 나온 개역판 성경과의 차이는 창세기 1:1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텬디를 창조하시니라(1939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952년)

이뿐만 아니라 아래아 등 옛 철자법을 동시대의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고쳤고, 오역된 부분도 상당 부분 수정한 것이다. 이렇게 나온 개정판 성경은 전쟁 중에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다. 부산에서 <성경전서> 초판을 3000부 인쇄하여 보급했고, 이전에 일본에서 만들어 들여온 포켓 신약성경 15만 부를 국군 장병과 포로들에게 반포하기도 했다. 임 총무를 통해 보전된 개정판 성경 원고. 우여곡절 끝에 나오게 된 성경은 3년 여간 지속된 전쟁으로 황폐해진 이 땅에, 무엇보다 가족과 이웃을 잃고 비판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책이 되었다. 무엇보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놀라운 원고의 생존 과정이 있었음에 새삼 감사하며 손에든 성경을 펼쳐본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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