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낮고 작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로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공연 요청이 왔다. ‘○○여인숙’에 살고 계신 분들을 위한 공연이었다. 그 여인숙에 계신 분들은 거리를 떠돌던 노숙인들이었다. 병들고 외롭고 춥고 쓸쓸한 삶을 살아왔던 이들의 친구로 오랫동안 함께해 온 벗님들. 빵을 나누고 옷을 나누고 생계지원 등 필요한 복지를 연결시켜 주는 그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여인숙 문을 열고 들어가니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오래된 여인숙일까? 낡고 남루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피난처와 같은 곳일 듯. 공연을 준비하는데 공간이 너무 좁아서 신발 벗는 공간을 무대로 사용했다.

한 분 두 분 자리에 모였다. 술에 취한 분들이 절반이었다. 그분들 한 분 한 분이 내 눈엔 예수로 보여서 마음이 울컥했다. ‘무슨 노래를 해야 하나.’ 나의 레퍼토리에 든 노래들이 이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없을 것 같아서 난감했다. 첫 노래를 불렀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노래 후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생은 未완성이겠지만 사랑은 美완성입니다. ‘천국 속에 사랑’이라는 말보다 ‘사랑 속에 천국’이라는 말이 더 옳지 않을까요? ‘사랑하라, 그리하면 평화가 따를 것이다’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만이 아름다움의 완성입니다.”

내 노래 순서가 끝나고 멀리 대구에서 오신 목수이자 시인이신 한 선생께서 한 편의 시를 들려주셨다. ‘무연고자의 죽음’이라는 시였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마지막 순간 누구에게 연락할까 마지막 이별을 위해 와줄 수 있느냐고 그러나 연락할 곳이 없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피붙이 살붙이가 없어서 무연고자가 아니라, 사는 형편들이 고만고만하여 연락하면 오히려 짐이 될까 부담스럽고 부담이 될까봐 연락도 못하고 살았다. 집도 없이 떠도는 내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연락도 못하고 살았다. 그래서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이 이 노래를 불렀다.

“불꽃처럼 살아야 해 오늘도 어제처럼 저 들판의 풀잎처럼 우리 쓰러지지 말아야 해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리 미워하지 말아야 해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날까지 순하고 아름답게 오늘을 살아야 해 정열과 욕망 속에 지쳐버린 나그네야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가슴으로 노래하는 파초의 뜻을 아오” - 수와 진의 ‘파초’

공연이 끝나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앉아있는 것도 힘든 좁은 공간. 먼저 방에 들어가신 분들은 나오지 않은, 주최자들 위주의 사진이 되었다. 늦은 밤 인사들을 나누고 돌아서려는데 대구에서 오신 시인께서 나를 위한 선물로 짧은 글귀의 액자를 건네주셨다. 그 글귀가 마음에 깊이 박힌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신영복- ‘함께 맞는 비’)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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