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랑하거나

함께 죽는 거야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소설 <페스트>는 작가 알베르 카뮈가 7년 동안 구상해 1947년에 발표한 5부로 구성된 작품이다. 작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오랑시(市)를 알제리 해안에 있는 “멋도 없고 비둘기도 없고 나무와 공원과 새들의 날갯짓도 볼 수 없는 밋밋한 도시”라고 설명한다. 소설은 ‘페스트’ 속에서 10개월간 벌어진 참혹한 일상을 오랑시를 방문했다가 발이 묶인 ‘장 타루’가 기록한 수첩의 내용을 진술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어느 날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가 진료실을 나오다가 계단에서 죽은 쥐를 발견한다. 건물관리인 미셸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그는 “이 건물에는 쥐가 없다. 누군가 장난치려고 죽은 쥐를 던져놓은 것”이라고 흥분한다. 그러나 리외는 자신의 아파트 복도에서도 피 흘리며 죽은 쥐를 발견하고 불길한 예감을 갖는다. 폐결핵으로 투병중인 아내를 멀리 떨어진 요양소로 보낸 리외는 도시 곳곳에서 죽은 쥐들을 발견하며 이 도시에 ‘페스트’가 출현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이후 미셸이 페스트 증상으로 죽게 되자 대책회의를 열지만, 도지사를 비롯한 다른 의사들이 “이 질병을 페스트라고 〉단정하기는 너무 성급하다”며 미온적 태도를 보인다. 이 질병을 ‘페스트’라고 확신한 사람은 리외와 늙은 의사 ‘카스텔’뿐이다. 그러다 고열과 림프절 멍울이 지는 환자가 속출하고 사망자 수가 급증하자 도지사는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봉쇄하라”는 공지를 내린다. 이제 오랑은 폐쇄되고 교통통제와 식량과 연료배급제, 우편물 금지, 등화관제가 실시된다. 도시 전체는 ‘거대한 감옥’이 되고 시민들은 죄수처럼 살게 된다. 서술자는 오랑을 “웃음을 잃어버린 우울한 도시가 되었다”고 진술한다.

서술자는 페스트 사태를 대응하는 여러 인물을 소개한다. 의사 리외는 자신이 맡은 진료와 치료행위를 진실하게 수행한다. 과거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경찰에 발각될까 두려워 자살까지 시도했던 코타르는 페스트 사태를 반긴다. 경찰이 자신을 체포할 여력이 없으리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 레몽 랑베르는 파리에 있는 아내에게 가려고 불법 밀매업자와 교섭하며 이 도시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나 “페스트와 싸우는 것은 영웅주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성실성이다”라는 리외의 설명을 듣고 “혼자 탈출하여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고백하며 오랑에 남는다.

고위검사였던 아버지가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하는 냉정한 모습에 절망하여 “사람이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다.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전념할 것이다”라고 결심한 후 ‘페스트에 저항하는 보건대 설립’의 필요성을 리외에게 심어준 장 타루, 페스트 박멸을 위해 혈청 제조에 몰입하던 늙은 의사 카스텔, 이런 재앙이 찾아온 것은 ‘악한 인간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선포하며 “지금 여러분은 불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불행은 여러분께 당연한 것입니다”라고 설교한 파늘루 신부.

페스트는 3개월 만에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페스트가 창궐해 사망자가 급증하자 죽은 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인 장례조차 못하고, 시신을 구덩이에 쏟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타루는 지쳐가는 보건대원들에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함께 사랑하거나, 함께 죽는 것뿐입니다. 이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라고 독려하며 “페스트에 항복하기보다는 끝까지 저항하자”고 설득한다.

이때쯤 보건대의 분투가 빛을 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페스트에 감염되었던 그랑이 카스텔이 제조한 혈청을 맞고 회복한다. 페스트 감염은 감소하고 완치는 증가하며, 페스트로 죽어 사라졌던 쥐들이 다시 나타나고 고양이도 발견되자 오랑은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이듬해, 시 당국은 ‘페스트 해제령’을 내린다. 10개월만의 해방이었다. 고립과 단절에 눌렸던 오랑은 다시 환희와 축제로 뒤덮인다. 그러나 페스트로부터 승리를 쟁취한 그날 리외와 끝까지 협력했던 타루가 페스트에 희생되자 모두가 슬퍼한다. 소설은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내복에 잠복해 있다가, (중략)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것이다”라는 서술자의 ‘무거운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페스트는 오랑 시민에게 불신, 체념, 절망, 분노, 폭력, 단절, 고립과 같은 ‘어둠의 문화’를 쏟아내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 오랑을 강타하고 사라진 페스트는 지금 ‘자신의 이름’을 감춘 채, 전쟁, 이기주의, 인종차별, 종교 갈등, 향락, 탐욕이란 ‘새 이름’으로 신분을 바꾸어 여전히 현대도시를 감염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 페스트는 지금도 살아있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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