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취미가 독서인 줄 알았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주로 하는 일이 글쓰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게 단순히 책뿐만이 아니라 책과 관련한 온갖 콘텐츠라는 걸, 내가 만들고 있는 게 단순히 원고가 아니라 콘텐츠라는 걸. 독서가인 줄 알았는데 콘텐츠 향유자였고, 글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책과 관련한 일을 하는 나를 누군가가 책‘만’ 아는 혹은 읽는 사람이라고 여길 때 그것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당혹스럽다. 내가 ‘책’이라는 콘텐츠를 가장 사랑하는 건 맞지만 사실 많은 시간 ‘책’에서 파생한 콘텐츠를 향유하고 ‘책’ 이외의 콘텐츠로 삶을 채워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책’을 읽는 것처럼 콘텐츠를 읽는다. 그것도 매일매일.

콘텐츠로 채우는 하루

주중에는 시간을 쪼개 콘텐츠를 읽고, 보고, 듣는다. 주말에는 시간을 쪼개지 않고 콘텐츠를 읽고, 보고, 듣는다(물론 바깥 활동이 없는 주말에만 가능하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먼저 ‘구독’하고 있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유튜브 채널을 켠다. 이전에는 라디오로 듣기만 했다면 이제는 보고 듣는다. 그리고 읽는다. 무엇을? 나와 함께 실시간으로 이 시사 프로그램을 향유하는 다른 구독자들의 의견을. 시사 프로그램에서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무엇보다 사람을 듣고 보고 읽는다.

출근길에는 ‘구독’하고 있는 팟캐스트를 골라 듣는다. 보고 읽는 일에 제한이 있는 길 위의 시간에는 듣는 일이 제격이다. 지하철을 탄다면 책 읽기를 염두에 둘 수 있겠으나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 읽을 여유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버스를 타고 출근하거나 직접 운전을 하며 출근하는 사람에게는 듣는 일이 최선이다. 주로 책 관련 팟캐스트를 듣지만 내 팟캐스트 구독 목록은 사실 온갖 주제로 가득 차 있다. 시사, 심리학, 미스터리, SF, 영화, 고전, 라이프스타일, 설교, 음악 그저 대화로만 이루어진 팟캐스트까지.

점심을 먹을 때(요즘 우리 회사는 혼자 밥 먹으며 쉬는 게 대세다)는 밀린 드라마를 ‘다시보기’ 하거나 12시에 즐겨듣는 책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집중해 듣는다. 머리가 무겁고 업무가 과다하게 느껴질 때는 가볍게 스포츠 경기를 ‘다시보기’ 한다. 때마침 난 겨울에 리그가 진행되는 배구 종목의 특정 팀 팬이어서 ‘이긴 경기’를 다시 보며 그 승리의 맥락을 따라가는 것을 하나의 취미로 삼고 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걸 떠나, 선수들이 각각 포지션에 따라 팀플레이를 맞춰가는 일을 보는 재미와 그 과정에서 감독의 전략이 구현되고 선수가 성장하며 팀이 자기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이 여느 서사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6개월간의 긴 시리즈의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다.

이렇게 모든 타임마다 향유하는 콘텐츠를 이야기하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간단히 요약하자면, 업무 중에는 틈틈이 뉴스레터를 읽고, 퇴근 후에는 누가 뭐래도 드라마고, 주말에는 역시나 책이다. 물론 주중에도 시시각각 책을 손에 잡고 읽지만.

콘텐츠 읽는 풍요로운 삶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많이 읽고, 보고, 들을 필요가 있나? 그러게나 말이다. 그런데 어떡하나? 난 사람과 세상이 궁금하고 콘텐츠는 다채롭게 세상을 알려주며 무엇보다 내 몸을 통과한 콘텐츠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내 삶의 영역과 관계의 지평을 확장하니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 지면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콘텐츠, 내게 기쁨과 용기를 주었던 콘텐츠, 혼자 알기에는 아까워 공유하고 싶은 콘텐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일은 매일 사람들과 밥 먹고 대화하며 하는 일이고, 일터에서 주로 하는 업무에 속한 일이며, 밤에 퇴근 후에 사적으로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므로 익숙하게 그러나 새롭고 즐거운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박혜은

질문하는 사람. 책과 사람 잇는 일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 현재는 뉴스레터 에밀앤폴M 발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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