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여가연구소 옥성삼 소장이 소개하는 묵상하기 좋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걸을 만한 공간을 소개한다. 전국 곳곳에 숨겨져 있는 귀한 ‘이야기’가 있는 곳을 다니다보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여가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 <편집자 주>

갯벌, 노두길, 소금밭

수십 개의 섬들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섬이 된 증도는 국내 최대 소금밭이 자리하고 있다. 1953년 한국전쟁 피난민을 위해 두 섬을 제방으로 연결해 만든 140만평에 달하는 태평염전은 옛날 방식 그대로 천일염을 생산한다. 소금 창고를 개조한 소금박물관은 소금의 역사와 천일염 제작 과정도 체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태평염전에 있는 염생식물원은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으로 갯벌 사이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기에 일품이다. 함초 칠면초 해홍나물 등 70여 종의 염생식물이 계절에 따라 녹색 홍색 자색 등으로 바뀌는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태평염전에서 남쪽으로 걸으면 화도 노두길이 나온다. 썰물에 노두길이 드러나면 갯벌을 가로지르는 1.2km의 평온한 걷기를 즐길 수 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게 시멘트로 포장된 곧은 길이지만 햇살과 바람 혹은 눈을 맞으며 드넓은 갯벌을 가로지르는 풍경이 넉넉하다. 화도에서 다시 노두길로 나와 서쪽으로 향하면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짱뚱어다리까지 4km의 우전(羽田)해변을 만난다. 인적이 드문 겨울 바닷가는 슬로시티(slow city) 증도의 느림과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다.

백사장 곳곳에 송골송골 쌓인 모래 뭉치가 지상화처럼 신기하다. 춥고 흐린 날 우전해변에 만난 빛내림, 짱둥어다리에서 바라보는 노을, 넓은 갯벌을 실핏줄처럼 흐르는 물의 길에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상처를 품은 사랑의 섬

짱뚱어다리를 건너면 증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묘지와 기념비가 있다. 가까운 곳에 커다란 순교기념관이 세워졌지만 순교지 바닷가의 아우라에는 못 미친다. 문 전도사는 오늘날 신안군 내 100여 개 교회와 80%에 이르는 지역 복음화의 밀알이다. 한해 고무신 아홉 켤레가 닳을 정도로 ‘노두길’을 오가며 전도한 그는 6?25 전쟁 초기 좌익세력에 의해 바로 이곳 바닷가에서 순교한다. 문 전도사가 오갔던 노두길과 돛단배 길을 따라 이어지는 순교와 사랑의 이야기도 많다.

건너편 임자도의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는 이판일 장로와 임자진리교회 48인의 순교자 그리고 원수를 용서한 이인재 목사의 사랑이 만든 별빛이다. 하루를 더 머문다면 상정봉, 문 전도사가 기도했던 바위에 오르기를 권한다. 우전해변과 한반도 모양의 해송, 멀리 작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증도 동쪽 병퐁도에 딸린 기점소악도 5개 섬 12km에 12사도의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 12개가 있다. 썰물 한나절이면 섬을 연결하는 4개의 ‘노두길’과 베드로의 집(건강의 집)에서 시작되는 일명 ‘섬티아고’를 여행하듯 걸을 수 있다.

섬들의 은하에서 빛과 소금을 구하자

섬은 쉼이고 숨이며 그리움이다. 갯것의 낡은 한적함이 별처럼 흩뿌려진 신안은 천사의 섬이다. 자은, 비금, 임자, 증도 등 신안의 섬들은 저마다의 맛을 지닌 산책로와 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그중에서 증도가 품은 풍경과 이야기는 겨울철 별자리 오리온을 만나듯이 밝고 환하다. 한반도 휴전 70주년의 새해는 증도의 소금밭 70주년이기도 하다. 증도의 소금밭과 노두길을 걸으며 내 인생의 빛과 소금을 찾고 평화가 깃드는 한반도를 기원해보자.

 

옥성삼

생활여가연구소 소장으로 서울 골목길 순례 등 여가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이다. 저서 및 공저로 <왜 조선교회는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가>, <디지털시대의 교회와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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