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이 흘러가도록〉

 

2023년도 달력이 놓인 지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물같이 흐름을 절감하면서 제인 욜런 글, 바바라 쿠니 그림의 <강물이 흘러가도록>을 다시 읽어봅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Letting Swift River Go>이니, 직역한다면 ‘스위프트 강이 가도록 놔두기’가 됩니다.

여섯 살 소녀인 샐리 제인의 유년기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나뭇잎이 붉게 물든 가을날, 학교 가는 길에 만나는 친구들, 맑은 여름날에 즐기던 강 낚시, 공원묘지에서 도시락 먹기, 멀리서 들려오는 밤기차의 기적 소리, 그 소리에 놀라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올빼미, 깜빡깜빡 빛을 내며 하늘을 나는 개똥벌레…. 그러다가 소녀는 자그마한 사건 하나를 만납니다. 어느 날 밤 아이들이 유리병에 개똥벌레를 잡아 가둬놓았을 때 샐리의 엄마는 머리를 흔들며 “놔 주렴, 샐리 제인”(You have to let them go, Sally Jane)이라고 하셨고, 소녀는 곧 따랐습니다.

그런데 조용하고 평온하기만 했던 이 마을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보스턴에 물을 대기 위해 마을의 강을 막아 댐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보스턴 사람들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돈과 새로운 집, 그리고 더 넉넉한 생활을 약속받습니다. 그 후 이 마을의 모든 것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묘지는 옮겨지고 나무들은 베어지고 집들은 파괴되었으며, 소녀의 가족도 이사 가게 되었고, 친구들 몇몇은 작별 인사를 할 새도 없이 각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댐이 건설되고, 댐의 물은 스위프트 강의 작은 마을을 여러 개 삼켜버렸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어른이 된 주인공은 아버지와 함께 저수지를 찾습니다. 배를 젓던 아버지가 호수의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저길 보렴, 샐리 제인. 프레스콧 마을로 가던 길 자리야. 저건 비비 시냇가 가던 자리고, 저긴 네가 세례를 받은 교회가 있던 자리란다. 학교가 있었고, 마을회관이 있었고, 오래된 돌집 방앗간이 거기 있었지. 다시는 그 모든 걸 못 보게 됐구나.” 라고 과거를 회상합니다.

샐리가 배 밖으로 손을 뻗어 강물을 두 손에 모으자 잠시 바람 소리와 기차 소리, 학교 가던 길에 친구들을 만났던 네거리, 지금은 사라진 그 모든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물에 잠긴 세월 저편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놔 주렴, 샐리 제인.” 샐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펴 강물을 흘려보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본래 이 땅의 나그네요, 순례자입니다(베드로전서 2장 11절).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나그네의 의미는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염세주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평생 나그네로 살았지만 자신에게 영원한 본향이 있음을 믿고 기뻐했습니다(히브리서 11장 13절). 믿는 자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받아 상속자가 되었습니다(로마서 8장 17절). 그래서 우리의 현재 삶이 “수고와 슬픔뿐”인 것처럼 느껴질 때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오늘도 위로와 용기를 얻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땅의 이야기이자 강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은 어린이보다 인생의 경험이 많은 부모와 조부모에게 더 강한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바바라 쿠니의 그림책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찾기 힘든,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이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림 안에 담겨 있습니다.

ⓒ 『강물이 흘러가도록』, 제인 욜런 글, 바바라 쿠니 그림, 시공주니어

현은자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생활과학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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