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화 권서 이야기

 

대한성서공회가 펴낸 <대한성서공회사>에는 성경이 이 땅에 전해진 경위, 즉 번역과 전파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과정을 따라 가보면 그 일을 위해 애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너무나도 많은 우여곡절과 고난이 있었다. 500여 년간 유교가 바탕이었던 조선사회와 기독교는 크게 갈등했다. 정치적으로는 서양 세력에 대한 반감이 컸고, 특히 기독교의 조상제사 거부는 박해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조선의 권서들은 전국 각지에서 성경을 판매하고 복음을 증거했다. 매우 고된 일이었지만 그 무엇보다 보람되었기에 권서들은 사역을 이어갔다.

경상남도 양산 출신 김기화 권서는 1912년부터 26년간 권서를 지낸 전도의 주역이다. 아마도 경남 지역에서 그가 가장 많은 성경을 판매했을 거다. 그가 판매한 성경만 해도 20만 권이 넘었다는 것이다. 물량이 부족해 성경 공급을 못할 지경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토록 많은 성경을 판매하면서 사후관리까지 했다는 점이다. 김 권서는 매서인으로서 성경만 파는데 그치지 않고, 전도해서 믿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끝까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지난 봄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는데 한 젊은 부인이 나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뒤, 몇 달 전에 내게서 복음서 한 권을 사서 읽고 예수를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할 말이 있으니 시간을 내어달라고 했죠.”

몇 달 전 김 권서에게 성경을 산 여인이 말씀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된 거다. 거기까지만 해도 권서로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예수를 믿은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여인은 김 권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제 부친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가족 중에 네 명이 몰래 예수 믿기로 했으나, 아직 신앙을 말할 용기는 없습니다. 가장이 회심하면 평안해질 텐데…. 부친이 워낙 완고하니 예수 믿자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날벼락이 떨어질 테니까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던 당시, 전도란 단지 성경 팔고 세례·입교만 주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가정에 닥칠 여러 어려움들을 돌보면서, 복음의 사람으로 든든히 서기까지 함께하는 것. 그것이 전도자의 몫이었다. 김기화 권서는 그런 전도자였다. 수십만 권의 성경을 팔았다는 업적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복음을 듣고 본격적인 갈등과 시험에 직면한 사람들을 상담하고 돌보며 끝까지 신앙적으로 인도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씨를 뿌리고 심는 것까지는 쉬울 수 있지만, 그 다음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싸우며 식물이 열매 맺게 하는 것, 보살펴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김권서의 삶이 우리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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