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에게 전화한 적이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바쁜 일이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바로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문자로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문자보다는 전화로 할 이야기이었기에 통화가 언제 가능한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다시 문자가 왔다. 사실 요즘 자신이 전화를 받기가 힘들다고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니 언제부터인지 부모와도 문자로 소통하고 있고, 전화기만 보면 가슴이 뛰고 부담되어 누구의 전화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성인 남녀의 53.1%가 전화를 두려워하는 이른바 ‘콜 포비아’를 경험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콜 포비아가 있는 경우 전화가 단순히 껄끄러운 것을 넘어서 기피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공포로 느껴진다고 진술했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면 식은땀이나 심박수 증가, 묘한 긴장감, 어지러움 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디지털 세계를 일컬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모든 것들이 상호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라고 한다. 실제로 수 년 전, 온라인 친구가 천명이라고 하면 놀랄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한 풍경이다. 그 어떤 시기도 이렇게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진 적이 없었다. 우리는 그 친구들의 동선과 여행, 중요한 추억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친구로는 등록되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생일까지 보게 된다.

또한 우리는 얼굴을 모르는 상대와도 별 어려움 없이 채팅을 한다. 수십 명이 들어와 있는 방에 초대되어 수십 개의 알림음이 울리는 한복판, 모두가 신나게 폭죽도 터뜨리고 춤도 추는 이모티콘을 보내지만, 모두가 웃고 있지는 않다. 대면이 사라진 그곳에 이모티콘만이 화려한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사람들은 무엇인가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10명 중 6명이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외로움은 단절감을 동반하는 굉장히 아픈 감정이다. 초연결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단절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서로 연결된 사회에 놓인 우리들의 자화상은 공허하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하는 말이다. 요즘 ‘허기’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있다. 인간관계의 팽배 속에서 허기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왜 모종의 결핍감이 있을까?

피자의 전단 광고를 보면 피자의 가격과 영양성분이 상세하게 나와 있고, 맛에 대한 여러 설명이 나와 있다. 그렇다. 우리가 다양한 자료를 놓고 이를 보며 어떤 맛이 나타날 수 있는지를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먹어보지 않는 이상 그 피자의 맛을 알 수 없는 것.

인간과 인간이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것, 손과 손을 잡는 것, 타인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얼굴이 발그레 변하는 것과 입술이 약간 떨리는 그 순간,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눈동자는 디지털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관계는 보고 듣는 것이 아니다. 분석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체험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단 만나야 한다. 우리 내면에 스치는 고립감과 외로움은 피자 전단만 보고 있을 때 느껴지는 허기와 같다. 요즘 특히 인간이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피자 주문을 하는 것처럼, 보고 싶은 이와 작은 약속을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피자는 둘이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이 내 앞에 있다면 심리적 배고픔에도 포만감이 생긴다. 인간관계는 체험이고, 현존하는 그 순간의 경험은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헌주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 여러 심리/정서 관련 과목을 맡고 있으며, 다수의 기업과 교회에서 상담심리에 관련된 스트레스 관리, 감정 코칭, 관계 증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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