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저울인가

 

성경이 기록될 당시 사회의 산업은 농업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성경은 고리대금을 엄하게 금하였다(출애굽기 22장 25절, 신명기 23장 19절). 공동체 이스라엘이 꿈꾸는 사회란 ‘평등이 구현되는 세상’이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바로를 정점으로 한 소수 특권층을 위해 많은 백성이 노예화된 구조의 사회를 탈출하여 전혀 다른 세상, 인류가 실현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보편적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펼치기 위해 출애굽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회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나타났다. 권력을 가진 왕과 땅을 많이 가진 부자들이 등장하였고, 가난한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돈을 빌려 농사를 지어야 했다. 추수 때에 갚을 것이 없으면 땅을 내놓거나 자식을 바쳐야 했다. 이렇게 해서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이들은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성경은 이자 수입을 금했고, 희년을 통해 제도적 회복을 언급하였음에도 이스라엘 사회에 가난한 자는 언제나 있었다. 여기서 가난함이란 단순히 게으름의 결과를 말하지 않고 사회적 가난을 뜻한다. 가진 자들의 탐욕으로 사회의 불균형이 심화될 때 선지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이런 폐단을 비판하며 출애굽 정신의 회복을 촉구하였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16세기 플랑드르에는 고리대금업에 대한 작품을 남긴 화가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 쿠엔티 마세이스(Quentin massys, 1466~1530)의 <대부업자와 그의 아내>(1514)를 그렸다. 당시 네덜란드는 국제무역을 통해 매우 부유해졌다. 상업이 번창하였고, 예술과 문화 활동도 활발하였다. 마침 종교개혁의 바람도 불기 시작하였다. 화가의 가족 중에는 성경을 읽다가 변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동안 중세교회에 의해 부정되어오던 대부업에 대한 다른 시각이 혼재하기 시작하였다.

그림 속의 아내는 남편이 하는 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러기 전까지 아내는 성경을 읽고 있었다. 남편은 저울을 들고 주화의 가치와 함량을 재는 등 일에 몰두하고 있다. 비로소 직업으로 인정받게 된 대부업에 대한 긍정의 표현이어서인지 탐욕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상에는 환전 도구와 동전, 반지, 진주, 그리고 십자가 창틀과 첨탑의 예배당이 비친 볼록거울도 있다. 선반에는 유리 물병과 불 꺼진 양초와 사과, 서류들이 보인다. 화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화가는 그림의 액자에 “저울은 정확하고 무게는 같아야 하리라”(레위기 19장 36절)고 새겨놓았다.

경제 가치를 정하는 일에 공평한 저울과 추가 적용되어야 한다. 정의의 저울과 추가 누구에게나 고르게 적용되는, 성경이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갈망한다.

쿠엔티 마세이스, <대부업자와 그의 아내>, 패널에 유채, 71×68cm, 1514, 루브르박물관, 파리

최광열

미술평론가. 미술에 깃든 이야기를 끄집어내 벗들과 소통하기를 즐겨한다. 그의 담론에는 역사와 종교가 있어 그 재미와 의미가 더 쏠쏠하다. 담을 허물고 경계를 건너 성큼성큼 다가오는 세상을 추구하는 그는 하늘교회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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