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권서 이야기

 

대한성서공회가 펴낸 <대한성서공회사>에는 성경이 이 땅에 전해진 경위, 즉 번역과 전파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과정을 따라 가보면 그 일을 위해 애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미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온 맥파랜드(McFarland, 한국이름 맹의와). 그는 1904년 입국 후 대구 선교부에 소속되어 한국어와 문화를 익히며 경북 북부지역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1906~1913년까지 순회 복음전도를 하여 포항, 청송, 안동지역에 최소 30개 이상의 교회를 설립할 정도로 열정적인 선교사였다.

그의 열정은 한 권서에게로 이어졌다. 1908~1910년까지 함께 일한 김기수 권서다. 맹의와 선교사는 그의 삶을 ‘희생과 자기부인’이라고 평가했다. 복음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맹 선교사처럼, 그도 고향집을 떠나 200리나 떨어진 새로운 권서 사역지로 이사했다. 이때 연로한 아버지와 온 식구들과 함께 움직여야 해서 매우 힘들었지만 김 권서는 “내가 필요한 곳에서 주님께 봉사하기 위해서”라며 기꺼이 편안함을 포기했다.

당시 한국은 거듭되는 외세 침략으로 인해 외부인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고, 권서들은 배척당하거나 폭행당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김 권서는 열정을 온기로 바꾸어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선교사는 그의 권서 사역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그는 언제나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손한 태도로 인사한다. 잠깐 즐거운 우스갯소리를 한 다음, 구원의 주제로 들어간다. 그의 예의바른 행동에 사람들은 잘 들어주었고, 마침내 복음서를 한 권 사게 된다. 그는 전도할 사람이 눈에 띄면 언제든 다가간다.”

김 권서의 강력한 무기는 다름 아닌 친절과 예의바른 행동, 따스함이었다.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듣고 이 땅에서 처음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세상. 그들이 꿈꾼 아름다운 세상은 그 따스함 속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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