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여가연구소 옥성삼 소장이 소개하는 묵상하기 좋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걸을 만한 공간을 소개한다. 전국 곳곳에 숨겨져 있는 귀한 ‘이야기’가 있는 곳을 다니다보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여가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 <편집자 주>

아래 사진은 순례자의 교회 (사진 박춘화), 옛 교동교회 예배당(한국관광공사)이다.

세 섬이 하나로 연결된 교동평야

광화문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섬. 교동대교를 건너면 눈앞에 펼쳐지는 넓은 들판에 마음이 탁 트인다. 교동평야는 원래 갯벌이고 물살이 거세게 흐르는 바다였다.

13세기 몽골침입 때부터 조선후기까지 대규모 간척사업을 통해 세 개의 섬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넓은 들판이 만들어졌다. 휴전선 넘어 연백평야까지 직선거리 3km. 저기 연안마을의 닭 울음소리가 들려올 듯 지척이다. 해질녘 난정저수지 둑길에 서면 연백하늘의 황금빛 노을이 저수지 가득 담긴다. 십리 바다를 사이에 두고서 대만의 진먼섬과 중국의 셔먼이 20년 넘게 백만 발의 포탄을 쏘면서도 밤이면 함께 들었던 노래,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 떠오른다. 난정저수지에서 도보로 10여 분이면 수령 천년의 무학리 은행나무를 만난다. 일명 무학리 할머니 나무는 연백의 할아버지 나무와 함께 있었는데, 홍수로 이곳에 떠내려 왔다고 한다. 옛날 옛적에 은행나무가 불에 탔지만 이듬해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나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노랑으로 물든 은행나무를 보려면 서둘러야겠지만, 추수를 끝낸 교동평야의 한적함도 좋다.

유배와 실향에서 평화 전망대로

‘키가 큰(喬) 오동나무(桐)의 섬’이란 뜻의 교동에는 지금 오동나무와 관련된 전설을 찾을 수 없다. 신라는 왜 교동(喬桐)이라 했을까? 교동은 섬이지만 해수욕장도 없고, 민통선 지역에 있기에 남쪽 남산포와 월선포구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해변은 철조망으로 막혀있다. 다리가 놓일 때까지 섬 전체는 분단의 아픔과 긴장을 품은 현대판 위리안치(圍籬安置)의 공간이었다.

송도와 한양에서 가까운 섬으로 바닷물이 해자처럼 둘러진 교동은 고려부터 조선까지 왕과 왕족의 유배지였다. 무신정권은 고려 희종을 이곳에 유배시켰고, 안평과 연산은 교동에 유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사되거나 급사했다. 광해는 교동에서 다시 제주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했다. 세월이 흘러 6.25 전쟁 중 황해도에서 건너온 수 만 명의 피난민은 잠시 머물다 고향에 돌아갈 것이라 했지만 대부분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대룡시장을 중심으로 70년대까지 2만 명에 이르던 주민은 이제 3천명이 되지 않는다. 쇠락하던 대룡시장은 2014년 교동대교 개통과 함께 우리의 근현대를 추억하는 장소로 재탄생했다. 내년 봄 평화관광을 내세운 개화산 전망대가 오픈하면 또 얼마나 변할지 궁금하다.

교동의 문화유산과 세 교회 이야기

교동은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향교, 목은 이색이 즐겨 찾았던 개화사, 복원된 읍성 남문, 원형이 보전된 조선후기 한증막, 17세기 인조 때 남산포 일원에 설치된 삼도수군통어영 계류지 등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다수 있다. 더불어 이번 늦은 가을에는 이야기가 있는 교동의 세 교회를 찾아보면 좋겠다. 11월 4일은 송암 박두성 선생의 한글점자 훈맹정음 반포 96주년이다. 송암은 1899년 읍내리에 설립된 교동교회에 다니면서 1901년 존스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933년 상용리에 건축된 옛 예배당은 현재까지 원형이 보존되면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룡시장 옆에는 1952년 피난민 신자를 중심으로 설립된 교동중앙교회가 있다. 1982년 건축된 예배당은 정주건축 정시춘 박사가 설계했고, 2년간 교인들이 뒷산에서 돌을 캐 와서 수 만개로 쪼개고 다듬어서 외벽을 쌓았다. 예배당 건축기간 중 정부에서 섬 제방공사를 하며 남는 돌을 무상으로 가져다주기도 했다. 올 12월이면 교동중앙교회 예배당 건축 40년이고 교회창립 70년이다.

교동중앙교회 근처에는 3년 전에 세워진 순례자의 교회 예배당이 있다. 교회당을 둘러 조성된 춤추는 정원을 내려오면 작은 코이노니아 카페가 있다. 목사님은 방문객 누구에게나 드립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 순례자 교회에서 맛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커피향에는 소박한 평안이 피어난다.

 

옥성삼

생활여가연구소 소장으로 서울 골목길 순례 등 여가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이다. 저서 및 공저로 <왜 조선교회는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가>, <디지털시대의 교회와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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