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진 권서 이야기 -

대한성서공회가 펴낸 <대한성서공회사>에는 성경이 이 땅에 전해진 경위, 즉 번역과 전파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과정을 따라 가보면 그 일을 위해 애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1884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입국하면서 조선에 공식적인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20세기가 열리기 전 구한말 조선에는 아직 미선교지역이 더 많았다. 푸른 눈에 금발의 선교사들을 처음 보고 귀신인 줄 알고 깜짝 놀란 사람, 성만찬 의식을 ‘피와 살을 먹는’ 행위로 오해한 사람, 예수를 믿으면 부모 형제를 버려야 하는 줄 아는 사람 등 이 땅에서 기독교는 매우 생소한 종교였다.

1899년 어느 날, 남감리회에 소속된 권서 한석진은 경기 북부지역인 포천지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보장산의 한 마을에서 멍석을 깔고 짐을 푼 뒤 성경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이 구경하러 나왔다. 그날, 한 권서는 한 거한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흠씬 두들겨 맞은 한 권서는 피를 흘리면서도 성경을 주워 담은 뒤 불평 한 마디 없이 돌아갔다. 한 권서는 몸져누워 열흘이나 요양을 해야 했고, 보름 뒤에 다시 보장산 시장통을 찾았다.

성경은 다시 멍석 위에 전시되었고, 찬송을 불렀다. 이윽고 불한당이 다시 나타났고, 이번에는 몽둥이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불한당의 지인들이 그를 말렸고, 한 권서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 절뚝거리며 돌아갔다. 한 달이 지나 권서는 다시 그 장소를 찾았다. 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그만두고 돌아가라고 이야기했지만 한 권서는 기도하며 다시 멍석을 펴고 성경을 올려두고 찬송을 불렀다. 역시나 불한당이 나타났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있었다.

권서는 십자가와 죄 용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불한당은 한 권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가 한 권서에게 용서를 구한 것이다. “선생을 제 집에 모시고 온 것은 지난번에 두 번 구타한 것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을 사과드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폭력에 굴하지 않은 한 권서의 담대한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마을에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한 불한당.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후회하면서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넘어 성령의 감동이지 않았을까.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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