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대추 한 알© 장석주 시, 유리 그림

저는 경상남도 합천의 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저희 동네는 5월 말에서 6월이면 모내기를 시작합니다. 파릇파릇한 어린 모들이 조그마한 얼굴을 내밀고 한 움큼의 햇빛을 매일 마시면 어느새 더운 바람에 맞춰 살랑대는 벼들을 만납니다. 농부들은 한 여름의 강한 햇빛에 논이 마르지 않을까, 장마가 지속되는 날이면 논에 물이 넘쳐 기껏 자란 벼들이 상하지 않을까, 벼들 사이사이에 자란 피들이 영양분을 다 빨아먹는 것은 아닐까 늘 살피며 논을 돌봅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면, 이제 논에는 물이 빠져야 합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논에 물을 빼고 노랗게 물들 벼 이삭을 기대하며 바삐 움직이지요. 그렇게 9월 말에서 10월이 되면 드디어 일년의 농사를 거둬들이는 날이 옵니다.

쌀 한 톨은 그렇게 우리 식탁으로 옵니다.

그림책 <대추 한 알>의 표지에는 노랗게 익은 논을 배경으로 대추나무 그늘 아래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부자가 보입니다. 정다운 부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이어 반쯤 붉게 익은 대추열매를 배경으로 글 텍스트는 말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게 저 혼자 둥그러질 리는 없다.’

그 뒤로 비바람을 맞는 대추나무가 나옵니다. 강한 태풍이었는지 대추 열매는 몇 알 땅에 떨어져 있고, 젊은 부부는 강풍에 넘어간 벼를 모아서 다시 세우고 있지요. 하지만 그 뒤로 따스한 가을 햇볕에 벼는 노랗게 익어가고 대추 열매도 빨갛게 물들어갑니다. 그렇게 무서리 몇 밤을 맞고, 땡볕 두어 달을 맞고, 초승달 몇 날을 맞은 대추와 벼 이삭을 드디어 거두어들입니다. 올해 농사는 풍년인가 봅니다. 추수를 마친 젊은 부부는 아이들과 대추 열매를 두 손에 가득 들고 기쁘게 웃습니다.

그림책 <대추 한 알>은 한 가족이 이른 봄 농사를 준비하는 모습부터 가을에 추수를 하고 한 겨울 농사를 쉬며 다시 봄이 오길 기다리는 이야기를 시인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와 함께 담고 있습니다. 커다란 대추나무는 젊은 농부가 구슬땀을 흘리며 논을 돌보는 동안 함께 햇빛과 비바람을 맞으며 익어갑니다. 그림책 작가는 태풍이 와도, 비바람과 번개가 쳐도 논을 지켜냈지만, 무서리가 내린 밤 마음을 졸였을 농부의 마음을 <대추 한 알>의 시와 병렬 지어 표현했지요. 대추나무도 함께 태풍과 비바람, 무서리를 견디고 찬란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추나무는 누가 돌보았을까요?

시골에 살다 보니, 땅이 주는 풍요에 감사하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논과 밭 그리고 산과 들에는 누가 돌보아 주지 않는 많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감나무, 밤나무, 도토리나무, 대추나무,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나무는 때에 맞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요. 무서운 태풍이 지나가도 끄떡 없이 가을이 되면 주렁주렁 열매가 달립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이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는 창조주의 거저 주시는 은혜와 풍요를 누리며 삽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가을의 추수는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맺는 결실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때에 맞춰 비가 안 오면 가뭄이 지고, 수시로 잡초를 뽑고 흉한 벌레를 떼어내도 원인 모를 병충해로 일년 농사를 망치는 해도 있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하늘의 은혜를 바라고, 기다립니다. 풍성한 햇빛과 때에 맞는 단비를 주시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여러 자연의 섭리를 주관하시는 분이 올해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바라며 농부들은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지요. 이 가을에 우리가 먹는 햇곡식과 제철 과일들은 그렇게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것입니다.

 

강다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해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경상남도 합천에서 남편과 함께 작은 시골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그림책과 아동문학 속 세계관과 다음세대를 위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