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여가연구소 옥성삼 소장이 소개하는 묵상하기 좋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걸을 만한 공간을 소개한다. 전국 곳곳에 숨겨져 있는 귀한 ‘이야기’가 있는 곳을 다니다보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여가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 <편집자 주>

석호(潟湖), 산과 호수와 바다를 품다

진분홍 해당화가 꽃피는 나루라 하여 화진포(花津浦)라 부른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화강암 알갱이가 쌓이고, 그 위로 오랜 시간 파도에 밀려온 모래와 조개껍질이 모래톱을 쌓아 만들어진 갯벌호수가 석호(潟湖). 동해안을 따라 생겨난 18개 석호 중 가장 큰 호수가 화진포호이다. 두 개의 호수가 ‘8자’ 모양으로 만나는 화진포는 둘레 16km 72만평 넓이에 4개의 습지가 조성된 넉넉하고 평온한 곳이다. 북쪽 호수를 따라 1.7km 길이로 형성된 화진포 백사장은 에메랄드빛 바닷물과 함께 희고 고운모래가 일품이다. 호수와 백사장을 둘러싼 금강소나무 숲은 청정한 기운을 더한다. 화진포 동남쪽 소나무 숲길로 30분 정도 오르면 122m 높이의 응봉이다. 하늘이 담긴 넓은 호수, 길게 늘어선 모래톱, 외금강으로 달려가는 힘찬 산줄기, 보일 듯 아련한 해금강. 이곳 작은 봉우리 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가히 압권이다.

휴식과 공존의 공간

한적한 갯마을 화진포가 근대적 여가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은 1920년대 영국성공회가 이곳에 서양식 집을 짓고 하계 피정을 하면서부터이다. 바로 이기붕 별장으로 불리는 아담한 단층집이다. 이후 1937년 일제가 원산 선교부의 휴양지를 군사비행장으로 개발하면서 대신 제공한 곳이 화진포이다. 낯선 이방의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의사, 교사, 선교사들에게 휴식과 코이노니아 공간은 사역을 위한 중요한 요건이었다. 서울선교부는 남한산성에, 전남선교부는 지리산 시루봉에, 개성과 평양선교부는 송도에 휴양지를 마련했다. 원산의 선교사 휴양시설을 화진포로 이전하면서 1938년에 건축된 ‘화진포의 성’은 예배당 겸 셔우드 홀 가족의 별장이었다. 건축을 담당한 이도 나치를 피해온 독일인 베버였다. 의료선교에 큰 자취를 남긴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의 아들로 1893년 서울에서 태어난 셔우드 홀은 1941년 강제 추방될 때까지 해주 구세병원 설립과 크리스마스 씰 발행 등 의료선교와 결핵퇴치를 위해 헌신했다. 이후 일본군 휴양소, 1948년부터 1950년까지는 김일성 가족의 별장 그리고 1953년 화진포가 수복되면서 군 휴양 시설로 사용되었다. 두 개의 호수가 만나는 언덕에 6.25 전쟁 후 세워진 이승만 별장까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석호의 특성처럼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남북한의 역사가 충돌하고 공존하는 곳이 화진포이다.

화진포 이야기

철 지난 바닷가에 해당화 꽃마저 사라진 9월의 화진포는 사각거리는 백사장과 소나무 숲길을 맘껏 누리는 절호의 기회다. 40리 화진포 둘레길을 천천히 걸어도 좋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도 좋다. 별장 3곳을 둘러보거나 파도소리 들으며 맨발로 백사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응봉에 올라 7번 국도의 소실점 너머로 북녘을 바라봐도 좋다. 조선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금강산을 오가며 ‘화진팔경’을 노래했고, 1960년대 이시스터즈의 ‘화진포사랑’을 애창한 청춘은 이제 팔순의 노인이며, 2000년 ‘가을동화’의 순애보에 매료된 젊은이도 중년이다. 올해가 닥터 셔우드 홀과 메리언 결혼 100주년이고,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이 서울에서 화촉을 밝힌 지 130주년이다. 호수와 바다가 만나 석호를 이루고, 남북한의 역사가 현존하며, 일과 쉼의 이중주가 조율되는 고즈넉한 화진포에서 내 시간의 쉼터를 거닐어보자.

 

옥성삼

생활여가연구소 소장으로 서울 골목길 순례 등 여가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이다. 저서 및 공저로 <왜 조선교회는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가>, <디지털시대의 교회와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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