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이야기(story)를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작은 이야기들이 모이고 쌓이면 한 사람의 역사(history)가 됩니다. 시공간은 그림책 안에서도 나타납니다. 특히 그림책의 이야기는 페이지를 넘김으로써 진행되기에 그 서사를 ‘페이지 터닝(page turning)의 마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가 지은 <수잔네의 사계절> 그림책 시리즈는 사계절을 나타내는 네 권의 그림책이 병풍 그림책으로 가로로 길게 펼쳐집니다. 마을의 풍경과 길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의 여정이 ‘4미터 그림책’이라는 별명을 주었습니다.

<수잔네의 사계절> 그림책은 글 없이 그림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각 인물의 표정이나 시선의 방향, 몸짓, 소품이나 행동 등 세밀하게 묘사된 그림을 앞뒤로 번갈아보며 자세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뒤에서 일어날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곤 합니다. 또, 그림책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갈 때 공간적인 배경은 한 번씩만 등장하지만, 인물은 장면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각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그들과 함께 마을을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을사람들은 각 장면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상점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계속해서 나아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사람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작은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시리즈 중 <수잔네의 여름>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먼저 3층 집에 사는 아빠와 아이들을 따라가면 아빠는 수레에 물건을 잔뜩 싣고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아빠와 아이들은 수레를 끌고 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이들은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하고, 친구를 마주치기도 하며 계속해서 길을 갑니다. 다섯 번째 장면에서 비로소 이들의 목적지가 나타나는데 바로 플리마켓입니다! 아빠와 아이들은 광장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 참여하기 위해 물건들을 수레에 싣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번엔 2층 집에 사는 노부부의 모습을 따라가보겠습니다. 할머니는 잔디를 깎으며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고, 할아버지는 운전학원 선생님에게 손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할아버지는 운전학원 차를 타고 직접 핸들을 잡으며 동네 거리를 누빕니다. 한편, 마을사람 중에는 예쁘게 포장한 물건을 소중하게 들고 가는 이들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커다란 악어 튜브를 준비한 다니엘라와 장난감 배를 준비한 산토쉬 아저씨, 톰 아저씨와 책방 아저씨, 오스카 청년까지!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데, 오늘은 바로 수잔네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날입니다.

이 시리즈는 <수잔네의 겨울>에서 시작됩니다. 겨울 책에서 배가 불룩했던 아주머니가 봄 책에서 아이를 출산하여 유모차에 갓난아기를 누이고 산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또 유치원 공사도 겨울 책에서부터 시작되어 봄 책에서는 더 진전되고, 여름 책에서는 유치원이 10월에 완공된다는 알림판이 세워지고, 가을에는 드디어 유치원이 준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각 권의 그림책도 읽을거리들이 많지만, 네 권의 그림책을 펼쳐놓고 비교하며 읽으면 수잔네 마을의 이야기들을 더욱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그림책 <수잔네의 여름>을 아이와 함께 찬찬히 읽으며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무엇이며,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오늘의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수잔네의 여름』 ,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 지음, 윤혜정 옮김, 보림출판사

김현경

성균관대학교 아동문학미디어 교육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한국문예원언어콘텐츠연구원에서 연구하며, 경인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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