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권서 이화춘

대한성서공회가 펴낸 <대한성서공회사>에는 성경이 이 땅에 전해진 경위, 즉 번역과 전파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과정을 따라 가보면 그 일을 위해 애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편집자 주>

동네에 이름난 망나니가 있었다. 몸집이 크고 힘이 매우 셌는데, 마을에서 가장 못된 사람으로 통했다. 술 먹고 주정부리기 일쑤요, 노름판에서 수틀리면 상을 뒤엎었고, 싸움에서는 주로 시비를 거는 쪽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성미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그는 바깥에서나 집에서나 한결같았다. 아내나 자식들에게도 걸핏하면 손찌검이었다.

그가 1871년, 개성출신 이화춘이다. 그는 일곱 살에 부모와 형제를, 그를 거두어주었던 할머니도 열두 살 때 여의고, 기구한 인생을 원망하며 화풀이할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천주’(天主)를 믿으면 집안에 우환이 사라지고 악귀가 떠나간다는 동네 사람 방씨의 말을 듣고 천주학에 의지했다. 당시에 이화춘 부부의 아들이 병들어 있었는데, 천주교에 입교하기로 결심하고 주일 미사에 참석한 사흘 뒤 병이 깨끗이 낫게 되었다. 감동한 이화춘은 제대로 천주교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신부가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하여 이후 감리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때 만난 선교사가 로버트 무스(J. R. Moose) 목사이다.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난 뒤 이화춘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정직하게 노동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고, 온 식구가 신앙 안에서 변화되었다. 한양과 개성에서 권서로 활동했는데, 워낙 열심이어서 감리교 조선연회는 그를 간도지방 선교사로 파송하기까지 했다.

힘쓰는 방향을 완전히 바꾼 이화춘. 그에게 세례를 주었던 무스 선교사는 이런 글을 남긴다.

“나와 성서공회가 이 사람을 권서로 얻은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농사를 잘 짓고 있다가, 권서일을 요청 받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 ‘주의 일이라면 하지요.’ 그는 지금까지 충실히 봉사하고 있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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