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쪽 대표 오름, ‘새별오름’

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낀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봄의 색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면 가을의 색은 마음을 해체시킨다. 가을은 유독 더 많이 걷고 싶어진다. 식욕이 돋듯 마음의 허전함을 더욱 채우고 싶어진다. 산책을 하고 고행처럼 걷고 사색하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사색의 특권을 외면했다면 이 가을, 좀 더 풍요로운 사색의 길로 초대한다.

가을엔 억새를 뺄 수 없다. 색과 모양이 예쁘지 않지만 바람대로 흔들거리는 군무를 볼 때면 긴 숨을 쉬어보게 된다. 제주에는 368여 개의 오름이 있다. 가을이면 저마다의 모양으로 억새가 자라있고, 일출과 일몰에 따라 은빛으로, 금빛으로 파도를 탄다. 억새로 유명한 오름들이 많은 가운데 애월읍의 새별오름은 유독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매년 정월이면 들불축제로도 유명한 곳이다. 지금처럼 주차장과 시설들이 조성되기 전, 저녁하늘에 외롭게 샛별처럼 서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대로 한적한 목장의 풍경과 함께하는 오름이었다. 개발은 자본과 사람을 위함이니 아쉬움을 뒤로 할 수밖에.

멀리서 보면 수많은 사람이 줄줄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모습이 개미의 행진과 같다.

올라가는 코스는 남쪽의 짧은 급경사와 북쪽의 길고 완만한 경사의 길이 있는데, 여행객들은 대체로 남쪽의 급경사를 택한다. 오르다 보면 힘들어져 자기 몸에 대해 탄식들을 하게 된다. 숨도 가쁜데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숨이 턱까지 찬다. 정상에서 보는 풍경도 좋지만 오르는 중간 중간 뒤돌아 만나는 풍경은 오르던 자신의 위치와 점차 넓어지는 풍경을 함께 인식할 수 있어 재미가 있다. 힘겹게 오르고 나면 100여 미터의 정상을 향한 편한 길이 나온다. 무척 멋진 길이다. 여행객들은 무성한 억새 사이에서 사진을 찍으며 가을의 정점에 빠져든다. 그 사이로 손잡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지난 긴 세월의 노고를 함께 밟고 올라가듯 존경스럽다. 519미터의 오름은 동서남북을 지도를 보듯 섬의 절반 이상을 조망한다. 편안한 남쪽 길로 내려가면 건너편에는 한참 유행하는 핑크뮬리가 피어있는 카페도 있어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높다.

오름에 오르다 보면 간혹 앞사람의 등을 밀어주며 올라가는 사람들을 본다. 힘껏 밀기보다는 약간의 보탬 정도이다. 앞선 사람은 뒷사람의 배려에 잠시 의지하다가도 미안한 마음에 재차 다시금 나가려는 힘을 낸다. 앞에서 끌고 올라가는 것보다 뒤에서 밀어줌이 도움 받는 사람에게는 더욱 자생력을 갖게 한다.

살면서 수많은 관계 가운데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얼마나 듣고, 얼마나 하며 사는가. 덕을 나누며 사는 일은 분명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보람과 감사함을 갖게 한다. 살다보면 호의와 배려와 도움들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덕분에 다시금 마음에 힘을 얻고 힘차게 걸음을 내딛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알게 된다. 덕에 덕을 더하여 덕을 나누려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지는 충만한 마음이 이 가을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한다. “당신 덕분입니다.”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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