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하는 사람들에게 메이크업 시간은 조금 남다르다. 화장을 하는 동안 방송에 불필요한 감정들을 정리하고, 오로지 방송에 맞는 마음으로 부단히 다잡게 된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매일 반복되는 그 시간은 ON-AIR가 켜진 시간만큼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던 기억이다. 일상의 나를 하나씩 내려놓고, 소란스럽던 마음의 번잡함을 비워내는 시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간은 때로 나다움을 벗어내야 하는 시간이고, 때로 나여서는 안 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어제처럼 오늘도 화장을 하고 웃고 있는 나는 어제와 같은 나일까, 어제와 다른 나일까.

오페라 ‘팔리아치’ 이야기

한 시골 작은 마을. 유랑극단 공연의 막이 오르기 직전이다. 무대에는 광대 토니오가 등장해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노래한다.

“신사숙녀 여러분, 사람들은 무대에서 흘리는 배우의 눈물이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여러분에게 인생의 단면을 보여드리기 위해,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무대 위로 올려놓죠. 여러분은 이제 그 사람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변장한 광대들의 초라한 모습보다도 그 속의 영혼을 보게 될 것입니다. 광대들도 여러분과 같이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Pagliacci)>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은 유랑극단의 단장이자 광대인 카니오. 어느 날 카니오는 자신의 아내가 마을의 청년과 사랑에 빠져 밀회를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 밤, 그 순간. 그러나 어쩌겠는가. 극한 분노와 혼란과 절망 속에서도 곧 다가올 저녁 공연을 위해, 그는 거울 앞에 앉아 스스로 분장을 한다. 얼굴에 새하얀 분칠을 하고, 입술은 새빨갛게, 뺨까지 물들도록 우스꽝스럽게 웃는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아리아 “Recitar!… Vesti la giubba 공연이 시작된다…의상을 입어라!”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토록 처절하고도, 가혹한 아리아는 전에도 후에도 없을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 하지만 공연은 해야지. 넌 사람이 아니니까. 넌 광대니까! 자, 공연이 시작된다! 의상을 입어라. 그리고 얼굴에 분칠을 해라. 관객은 돈을 내고 왔으니 웃고 싶어 한다. 웃어라, 광대여! 슬픔과 고통을 감추고…”

민낯의 나를 위해 박수!

19세기의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격의 다중성을 ‘그림자(shadow)’개념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페르소나(가면)에 적합지 않다고 생각되는 속성은 억압하여 묻어 두는데, 이 억압된 나를 ‘그림자’라 부른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럴듯한 나’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페르소나(가면)는 점점 더 두꺼워져가고, 그 아래 드리워져가는 그림자는 내면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표정과 감정의 괴리를 경험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융은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진다고 했다. 가면을 쓰고 역할에 맞게 잘 연기해낼수록 마음의 스트레스도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그림자를 제때 돌보지 못하면 허탈감, 불안과 우울이 한순간 자아를 덮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융은 그림자야말로 자신의 모든 힘이 묻혀 있는 금광이라 말한다. 깊이와 풍요로움, 지식과 창의력, 통찰력이 잠든 가능성의 공간. 그러니 그런 그림자를 억압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끌어안을 때 비로소 진정 나다운 힘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다. 오늘 화려한 무대 위에서 열심히 살아냈다면, 하루의 끝에서는 완전한 민낯으로 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향해 스스로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면 어떨까.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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