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젊은 시절
기타 치며 목이 터져라 사랑을 노래하던 젊음은 갔다. 그 시절 바닥이 차건말건 젊음이란 온도 하나로 몇 시간이건 광장바닥에 앉아 고독을 씹으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영어가사라 후렴만 대충 따라 불렀던 팝송도 그저 떼창을 하면 신났고, 어깨에 카세트를 메고 춤을 춰대던 기억도 지금 생각하면 참 젊음이었다.
그 젊음에 사랑은 간절했고, 하늘에 응답이라도 하듯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아이는 더더구나 극진히 사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으로 세월을 보내고 난 지금, 어디가 허전해지고 쓸쓸함이 가을바람처럼 밀려온다. 텅 빈 거리에 선 듯 목 뒤를 스치는 바람에 어깨도 으스스하다. 간절했던 남녀는 부부가 되어 세월 속에 둥글다 못해 무뎌지고, 짜릿했던 부모는 성장통 끝에 빈 둥지가 되었다.

사랑의 온도로 살아왔던 시간
가수 조용남이 불렀던 노래 중 ‘사랑 없인 못 살아요’를 기억한다. 가사인즉 한밤에도 한낮에도 외롭고 몹시 쓸쓸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사랑 없이는 못 산다는 이야기다. 이 가수의 절절한 고백이 아니라도 우린들 사랑 없이 살 수 있나? 나서는 부모의 온도로, 커서는 연인의 입김으로, 나이 들어가며 아이들의 눈길로, 세월이 흘러가며 친구들의 격려로 그렇게 우리는 사랑의 돌림노래를 불러가며 이 자리까지 왔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첫사랑이 지나고 나면 두 번째 사랑이 찾아온다는 것을. 사랑이 떠나간 자리는 곧 다른 사랑을 맞을 차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늘 사랑에 대해 준비된 인큐베이터이다. 빈자리에도 꿈을 꾸고 찬 자리에도 꿈을 꾸는 인간의 속성처럼, 우리는 빈자리를 보며 다시금 온도 가득한 사랑을 꿈꾼다. 아주 뜨거우면 덴다는 것을 배웠고, 너무 차도 동상에 걸린다는 것을 세월로 배웠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사랑은 그저 차지만 않으면 좋을 사랑이다. 혹시 내가 생각하는 ‘이 나이에 이런 사랑’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곧 사랑을 찾게 된다.

그들이 살려주었다
뒤를 바라보라. 지난 기억이 우리가 사랑을 받고 살았음을 보여준다. 부모를, 배우자를,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것 같으나, 실상 그들이 우리를 살려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 삶의 무거움이 힘을 주어 나를 앞으로 나가게 했던 이유이기에 우리는 모두 시지프처럼 날마다 아침을 끌어올렸다. 옆으로 보라. 나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이들의 면면이 보일 것이다. 등어리만 보이는 아내가 나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등이 굽어가는 남편이 등산을 가자고 한다. 어쩌나 싶었던 자식들도 열심히 온 힘을 다해 살아가고 손주가 가끔씩 우리를 보고 웃어준다. 가끔 카톡으로 안부를 전해주니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친구들도 이따금씩 연락하고 가끔은 밥도 먹자하니 나름 괜찮다. 돈? 돈은 원래 없던 거고 그럭저럭 살아가니 괜찮다. 그리고 이제 앞을 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연말이 다가오니 남은 시간 뭘 해볼까 생각해본다면 나름 계획도 챙기게 된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가을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뒤를, 옆을, 그리고 앞을 바라보라. 그곳마다 기억의 이름으로, 가족과 친구의 이름으로, 계획의 이름으로 우리는 사랑을 품고 있다. 멋진 하늘까지 있다 생각하면 사랑은 늘 우리 곁에 있어왔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가득하다. 그러니 조용남의 노래, 그 고백이 맞다. 우리는 사랑 없인 못산다. 사랑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시간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같이 기타를 튕기며 불러보자. 이 세상, 사랑 없이 어이 살 수 있나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랑 없인 난 못살아요!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이자 한국노인상담센터장. 상담전문가이자 부모교육전문가로 활동중이며 나이들어가며 필요한 것들과 어른의 역할에 대한 글을 주로 쓴다. <나이들수록 머리가 좋아지는 법> <가족습관> 등을 썼으며 <이호선의 나이들수록>을 글로 쓰고 영상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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