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씨는 아침에 눈을 뜨면 손을 뻗어 스마트폰부터 손에 쥡니다. 알람을 끄기 위해서지만, 어느새 정보를 부지런히 훑고 있습니다. 뉴스 스탠드에는 사건 사고부터 정치, 날씨, 문화계 소식들이 도착해있습니다. 잠이 깨기도 전에 정보의 물결 속에 둥실 떠다니는 듯하지만, 이미 그런 것에 익숙해진지도 오래. P씨는 자신의 필요와 취향, 성향에 맞게 배열된 정보들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특히 자신의 신념과 사뭇 다른 뉘앙스의 정보들을 어느 정도 걸러놓고 나니 정보가 많아도 그리 부대끼지 않습니다.

영국 심리학자인 피터 웨이슨은 이런 전제에서 출발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개념을 내놓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기반한 신념을 계속해서 지속하려는 본능, 자신의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에 주목하고, 그 외 정보는 무시하는 방식입니다. 내 신념이 공격받고 구멍이 뚫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성향을 말하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 ‘그래,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이것 봐,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잖아?’와 같이 자신의 신념을 강화시켜줄 정보를 찾으려는 경향인데,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옛 한자성어가 있는 걸 보면 현대사회만의 현상은 아닌 듯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삶에 확신을 더해줄 수도 있지만, 첫 단추에 오류가 있다면 삶의 불균형과 왜곡을 일으키는 출발점이 되기도 하지요.

작곡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는 호프만의 짧은 단편 소설을 기초로 완성된 오페라입니다. 주점에 들어온 호프만은 술에 잔뜩 취한 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그 중 첫 이야기는 인간이 아닌 사랑스러운 기계인형 ‘올랭피아’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올랭피아는 한 미치광이 과학자가 만든 인형인데, 어찌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보는 사람마다 홀딱 반할 정도였죠. 호프만도 이 인형을 보고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여기에 더해 호프만은 장사꾼으로 변장한 악마로부터 안경을 하나 사게 되는데, 이 안경은 상대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마법의 안경이었죠.

파티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올랭피아는 태엽이 풀어지면 춤과 노래를 멈추는 기계일 뿐이지만, 이 인형을 사람으로 생각하고픈 호프만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다 스위치 하나를 잘못 건드리게 됩니다. 그렇게 풀어진 나사 때문에 올랭피아는 쉬지 않고 춤추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호프만에게 ‘그녀는 인형일 뿐’이라고 조언하지만, 마술안경을 쓴 호프만에게 그런 말 따위가 들릴 리 없습니다. 이윽고 악마가 나타나 올랭피아를 건드리자 그녀는 더 빨리 춤추다 끝내 부서지고, 호프만은 부서진 부품을 손에 들고 허탈해합니다.
너무 어리석어 보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도 없게 만드는 호프만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페라 속의 ‘마술안경’을 쓰면 원하지 않는 정보는 저절로 걸러지고, 무시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을 알맞게 편집하고 오려내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마술안경은 곳곳에 있을 테지요. 우리도 살면서 나만의 마술 안경을 통해 걸러내고, 듣지 않고, 보지 않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더구나 내가 오늘 인터넷에 검색한 내용이 하루하루 데이터로 축적돼, 나의 선호도를 기억하고, 그에 맞춰 다음 데이터를 제안해주는 맞춤형 알고리즘 방식은, 고민 없이 편리한 선택을 하게 이끕니다. 확증편향을 극복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확증편향의 경향이 있음을 자각하고, 일상을 대하는 방식을 확신이 아닌 ‘호기심’으로 바꾸는 것, 신념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살피고 수용하는 것, 끝으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에 빠질 때만큼은 마술안경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랑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시절에는 더욱더 말이죠.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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