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다보면 조금씩 더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아는 것이 많아지고, 두려움이 줄어들고, 용감해지고, 더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했다. 교실 유리창을 가린 창살이 가끔 감옥처럼 느껴지고, 매일 같은 차림의 교복이 죄수복처럼 느껴지던 10대 시절의 믿음이었다. 어서 지긋지긋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화장을 하고 캠퍼스를 거닐며, 방학 때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꿈꾸던 대학생이 되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어른이 되었다. 그 시절보다 넓은 세계를 알게 되었고, 하고 싶은 것들도 늘어났지만, 해야만 할 일들, 해내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알게 된 것이 많아진 만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사람 사이에 조심해야 할 일도, 선을 그어야 할 일도 더 많아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그러나 자유로움 이면에 부담과 위험과 의무와 책임도 함께 알아가는 일이다. 나의 자유로움으로 인해 누군가 희생을 하기도 하고,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힘겹거나 아플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껏 자유롭기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다.

카르멘의 당당함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속에는 관능과 매혹의 상징인 여성이 등장한다. 불같은 매력의 집시인 그녀는 유혹에 능하고, 누구나 반할 정도로 매력적인데, 그것은 단순히 외모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면에선 다소 남성적이라 할 만큼 당시의 전통적 여성상을 뛰어넘는 그녀만의 자유로움이 큰 몫을 한다. 그 시절 이탈리아 오페라의 여주인공은 늘 청순가련한 소프라노가 맡았지만, 카르멘 역만큼은 메조소프라노가 맡은 것도 그 이유이다.
카르멘의 당당함과 자유는 어디로부터 나왔을까? 당시 집시는 정상적인 직업을 갖는 것에 법적 제한을 받을 정도로 천대받았기에, 막노동을 하거나, 도둑질과 밀수, 암거래 등으로 생존을 이어갔다. <카르멘>의 배경인 1820년경 세비야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안달루시아 집시들로 그 같은 최하층 노동자였고, 카르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그녀가 부르는 ‘하바네라’는 압권이다.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조심해요. 당신이 잡을 거라 믿는 새는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 버릴 테니.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한 불러도 소용없지. 협박도 애원도 소용없는 일.”
적극적이고, 오만하고, 자유로운 그녀의 사랑은 예술에 가깝다. 그런 카르멘을 단지 방탕한 여자로만 바라본다면 이 오페라의 매력은 찾아낼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을 바닥까지 알고 이해하며 살아낸 자유로운 영혼. 순간마다 진정성을 더한 인간이다. 사랑과 관능의 상징이었던 카르멘이 죽음을 무릅쓰면서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투우사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자유’였다.

니체는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자유는 ‘자기책임에의 의지’라고 하였다. 단순히 생존이나 쾌락을 위해 끌려다니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모든 순간에 기꺼이 책임지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했다.
그저 살아간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고 노력해야 얻어지는 것. 누구에게나 허락되어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닌 자유. 우리는 지금 얼마만큼 자유로운가.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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