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만드는 풍경’ 유석영 전 대표

대통령의 구두 이야기로 SNS를 달아오르게 한 일이 있었다.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낡은 구두 사진이 세간의 관심을 모은 일. 그리고 그구두가 청각장애인들이 손으로 만든 수제화라는 사실도 함께 화제가 되며 ‘아지오’라는 브랜드는 많은 이들에게 신속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명세를 탔을 그 즈음 이미 회사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앞이 캄캄한 소년
소년은 점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소년 앞에서 혀를 찼다. 무정한 현실 앞에서 가족들도 억장이 무너졌다. “나가 죽으라” 어머니는 독한 말로 아들의 처지를 비관했다. 마음 독하게 먹으라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소년은 보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런 소년에게 유일하게 덕담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꺼리던 외톨이 아저씨. “석영이는 앞은 못 봐도 말을 잘하니까 방송국 가서 아나운서 해라.” 앞이 캄캄했던 석영에게 아저씨의 한마디 말이 유일한 빛이 되었다. 부모님, 선생님께도 듣지 못한 꿈같은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사춘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결국 가출했고 노숙을 하며 인생 밑바닥에서 자신과 마주했다. 쓸모없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던 석영은 이내 아버지 집을 추억하는 탕자가 되었다. 돌아갈 집이 있고 무엇보다 눈 외에 사지가 멀쩡하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느꼈다. ‘무엇이든 하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한 자원봉사단체에서 그는 한 줄기 빛을 보기 시작한다.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의 물놀이에 도움을 얻고자 기독교방송에 엽서를 보낸 것.
“직접 오셔서 설명하는 게 어때요?” 전혀 예상 못 한 담당 PD의 전화에 기꺼이 방송에 출연했다. 그 결과 대본도 없이 진행된 방송이 대성공. PD는 또다시 그에게 거짓말 같은 제안을 했다. “어때요, 이제부터 직접 리포터를 해보는 게?”
동네 민폐였던 외톨이 아저씨의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나운서는 아니었지만, 말을 곧 잘하는 석영이가 마침내 방송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일터
소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대통령의 구두를 만든 <구두 만드는 풍경>의 창업자 유석영 전 대표다. 유 전 대표는 그렇게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리포터로, AD로 일하면서 자신과 같은 장애인의 삶과 일터 현장을 누볐다. 방송인으로 보낸 12년의 세월은 그의 길을 보다 명확하게 만드는 다림줄이 되었다.
방송사를 나와 본격적으로 장애인 복지를 위한 길을 걸었다. 파주의 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직을 맡으면서 경기도에서 유독 열악했던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운전과 꽃꽂이 등 꽤 다채로운 과정을 야심차게 갖췄다. 하지만 복지관의 문을 두드리는 청각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긴 고민 끝에 이유를 찾았다.
가난…. 다들 먹고 살기 힘든 탓에 복지관에서의 취미 활동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였다.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시각장애인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청각장애인들은 소통이 가장 심각한 생의 문제였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어가 아닌 ‘수어’를 쓰는 그들. 수어는 그들에게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유 전 대표는 깨달았다. 청각장애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복지는 ‘일자리’라는 것을.

구두 만드는 풍경…시즌 1
그는 방향을 바꿔 속도를 냈다. 마음속에 이미 청각장애인들의 맞춤 일터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포터 시절, 취재 현장에서 만난 구두를 만드는 청각장애인들. 손재주와 집중력이 뛰어난 청각장애인들은 노련하게 구두를 잘 만들었다. 에스콰이어, 엘칸토 등 교회와 기독교 기관이 운영하는 구두회사들이 꽤 있던 시절이었다.
유 전 대표는 농아인협회와 함께 마침내, 경기도 파주에 구두공장을 세웠다. “청각장애인들에게 행복을 주는 일터를 만들자.” 2010년 12월, 청각장애인 6명과 함께 그들의 일터, <구두 만드는 풍경>이 문을 열었다. 구두 이름은 ‘아지오(AGIO)’로 정했다. ‘편안한’ ‘안락한’을 의미하는 이탈리아 말이다. 아지오가 친구처럼 편안한 신발이 되게 하자는 바람을 담았다.
의미 있는 취지에서 비롯된, 참 순수하고 호기로운 창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자본력, 기술력, 브랜드 인지도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도전이 순탄할 리가 만무했다.
“당시 국내 구두 산업이 사양 상태에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끝물에 뛰어든 상황이었어요. 좋은 재료와 솜씨로 잘 만들면 승산이 있다는 참 순진한 생각만 했죠.”
물론 십고초려 끝에 모셔온 구두 장인과 청각장애인들의 열정 덕에 수제화는 손님들에게 호평을 받곤 했다. “이 구두 브랜드가 뭐야?” 하지만 빚은 쌓여만 갔다. 유 전 대표는 자신의 인맥을 풀가동 했지만, 그들 역시 구매에는 소극적이었다. 유시민, 배한성, 서유석 등 유명인들을 모델로 카탈로그를 만들어 닥치는 대로 영업을 뛰어다녔다.
“서럽게 번 구두 값은 임대료와 운영비로 사라지기 일쑤였죠. ‘이렇게 가다가는 다 죽겠구나’ 싶어 결국 폐업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어렵게 폐업이란 말을 꺼냈을 때 그들을 실망시켰다는 자책과 자괴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런데도 그는 또다시 직원들에게 여지를 남겼다. “다시 만나자, 다시 시작할 때가 올 것이다….”

구두 만드는 풍경…시즌 2
절치부심의 시간이 흘러 문재인 대통령의 낡고 해진 아지오 구두가 어느 날 SNS에서 화제가 됐다. 유 전 대표에게 전화가 빗발쳤다. “열의 아홉은 큰돈을 댈 테니 당장 구두 사업을 재개하자는 전화였어요. 하지만 쉽게 시작할 수 없었어요. 시작보다 어려운 게 유지라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관심도 식어질 거라 여겼다. 투자하겠다는 이들이 내놓을 막대한 자금은 결국 사업에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고 회수할 성격의 돈임을 잘 알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청각장애인들이 행복하게, 오래 일할 수 있는 쾌적한 회사를 만드는 것. 구두 만드는 풍경이 다시 문을 연다면 달성해야 할 원칙이고 꿈이었다. 그래서 다시 유시민 작가를 만났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어쨌든 대통령께서 영업을 해놓으셨으니 소박하게, 뜻있는 분들의 힘을 모아서 차곡차곡 해봅시다.”
그렇게 구두 만드는 풍경의 재 창업이 결정됐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보다 건실한 기업이 되기 위해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2017년 11월, 다시 문을 열었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아지오펀드’와 구두 ‘선 주문’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융통했다. 이때부터 아지오는 수제화 전문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고객을 찾아가서 직접 발을 측정하는 ‘출장 실측’을 전국 단위로 시행했다. 고객의 발 크기와 형태는 물론, 내향성 발톱과 티눈, 굳은살까지 확인하는 면밀한 과정이다. 그렇게 만든 신발은 고객이 최종 “OK”를 할 때까지 소통과 보정을 반복한다. 그 결과 재 창업 6개월 만에 소비자층은 삼천 명을 넘었고, 2년 후에는 1차 목표인 일만 명을 훌쩍 넘기며 안정세를 이어갔다.

실패는 절박한 자를 피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재기 후에도 어려움은 수시로 찾아왔다. 이번엔 팬데믹 사태였다. 수제화를 만드는 구두회사에게 전염병은 치명타였다. 고객의 발을 실측하는 첫 단계부터 막혀 버리는 상황. 그때 아지오 여성화 모델이었던 이효리 씨가 기지를 발휘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지오의 여름용 구두를 신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올렸던 것. 그 결과 혹독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아지오는 또다시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게 참… 하나님께서 요소요소 간섭을 하십니다. 믿는 사람을 붙이시든, 믿지 않는 사람을 붙이시든 위기 때마다 적절하게 일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제 믿음의 뿌리가 잘 박혀 있는지를 깐깐하게 지켜보신 후 제가 그 기대에 부응한다고 보시면 그제야 움직이시더라고요.”
초동교회 안수집사인 유 전 대표는 그때부터 지금껏 매일 1시간 이상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회사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 ‘처삼촌 벌초하듯’ 하던 기도를 하나님께서 절박한 간구의 시간으로 바꿔 놓으셨다고 고백했다.

안 보이는 CEO와 안 들리는 직원들의 꿈
구두 만드는 풍경은 현재 열 명의 청각장애인들이 일하고 있다. 수어 통역사가 항상 함께해 소통에 위축됨이나 불편함이 없다. 덕분에 매일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행복한 일터가 되고 있다.
유 전 대표는 얼마 전 대표이사직을 내려놨다. 회사를 창업해서 세우는 여기까지가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저는 아지오에서 모든 꿈을 다 겪어 봤어요. 꿈의 시작과 멈춤. 그리고 재기까지. 조합원으로서 <구두 만드는 풍경>의 꿈을 응원하며 지켜보고자 합니다. 꿈속에는 직원들이 함께 봉헌할 교회도 포함돼 있어요. 초창기부터 직원들과 간구했던 그 기도 제목….”

사진, 글=김희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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