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숨쉬다-이천에서 들려온 ‘꽃피는 봄날’ 이야기

보육원 아이들을 만나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포함’되어 살아간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그 포함의 범위는 어렸을 때 보다는 좀 더 다양해지고 확대되어간다.
이요섭 목사(더사랑교회)도 그렇게 주어진 범위 속에서 안전하게 포함되어 살아가며, 동시에 주어진 사람들을 포함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포함의 범위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십대부터 이십대 중후반까지 신앙적으로 많이 방황했어요. 그렇게 방황의 터널을 통과한 후 다시 찾은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이셨던 신경림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이천에 있는 성애원이라는 보육원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는 야고보서 말씀 앞에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장 선생님께 부탁해 성애원에서 중2 아이들과 1년 6개월 정도 한 방에 같이 살게 되었다. 1세~만18세 아이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서 공부도 가르쳐주며, 그저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보육원 아이들이 그의 삶에 ‘포함’된 것이었다.

특별한 교회, 특별한 공간
경기도 이천 장동리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특별한 교회가 있다. ‘꽃피는 봄날’이라 쓰여 있는 현판과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표현한 현관문, 노란색, 초록색으로 칠해져있는 특별한 건물을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어떤 사람은 교회라고, 어떤 사람은 북카페라고, 어떤 사람은 전 마을회관이라고, 또는 공연장과 게스트 하우스라고 부른다. 모두 맞는 말이다. 더사랑교회의 공간인 ‘꽃피는 봄날’은 그렇게 다양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자 공동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지금 ‘꽃피는 봄날’이라는 것을 깨닫기 원해서요. 왜 윤동주 시를 문에 표현했냐고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고백하던 청년 시인의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이 마음과 바람을 담아 꽃봄으로 들어 올 때는 시집을 열고 들어오게 되는 것이니까요.”
보육원에서 살던 청년이 ‘꽃봄’을 마련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국어교육을 전공한 후 학원을 운영하며 우리 아이들(보육원)을 데리고 왔어요. 다른 학생들이 그만두기 시작하더군요. 학부모들이 자녀들이 보육원 애들이랑 같이 교육받는 것이 싫다고 그만두게 한 것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나갔더니 나중에 더 번창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주변 개척교회 목회자 자녀들까지도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지요.”
‘사방 십리 안에 돈이 없어 교육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학생들이 없도록 하자’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마을 아이들을, 그 미래를 상관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아이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후 계속된 보육원과의 인연, 그리고 늦은 나이에 시작한 신학공부, 그 둘이 어떻게 연결될 지는 몰랐는데, 이어 알게 되었다.
“보육원 큰 아이들은 스스로 교회를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자기 혼자 교회를 갈 수 없는 영유아들은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인솔교사는 세 명인데, 영유아는 23명.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여의치 않았고, 예배를 드리러 갈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이요섭 목사가 아내와 함께 보육원 강당에서 2016년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것이 더사랑교회의 시작이었다.

환대의 장소를 마련
이듬 해 이 목사의 집 앞마당에 천막을 짓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주일 오후에는 성애원에 가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또한 전 마을회관을 임대해 ‘꽃피는 봄날’이란 이름을 짓고 성애원 아이들의 공부방, 마을 사람들의 카페이자 상담소, 교회와 동네를 방문하는 수많은 나그네들의 게스트 하우스까지 여러 용도의 ‘꽃자리’로 내놓았다.
‘꽃봄’은 중고등학생들이 성애원 아이들을 위해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하고, 문화사역자들이 찾아와 사람들을 만나며, 정을 나누는 장소가 되었다. 송경옥 사모의 활약도 한몫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집밥을 해먹이며 환대의 식탁을 주저 없이 마련해주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풍경이 달라진 상황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환대하는 장소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란 책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 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라는. 이렇게 우리도 함께하는 시간이 ‘꽃피는 봄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마련했습니다.”

진짜 공부방!
“영아부 예배를 함께 드렸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며 공부방을 학교 인근으로 옮겼어요. 공부방 이름은 ‘진짜 공부방’이고, 올해로 20년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가정 형편상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을 받아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모두 공평하고 평등하게 수업 받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전도사님과 청년이 함께 사역하며 적어도 우리 지역에 교육적으로 소외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지속가능한 사역을 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학원에 처음 보육원 아이들을 데려갔을 때 난색을 표했던 학부모들은 그러면 바뀌었을까. 학부모 교육을 부탁받아 찾아간 자리에서 이 목사는 적어도 우리가 우리 동네에 있는 고아들도 도와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냐고 이야기를 전했고, 그 강의를 들은 학부모들은 성애원에 찾아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봉사자들이 되었다고.

함께 살고 싶어요
보육원서 보호 받을 수 있는 만 18세가 지나면 아이들은 세상으로 홀로 나가야 한다. 이 목사는 그런 아이들이 고향으로 여기고, 집으로 여기는 그런 보금자리 마을, 공동체를 이루기 원한다고 했다.
“백일 때 만난 아이들이 20세가 되어 자립해야 할 때 같이 마을에서 살고 싶어요.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교회가 어머니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 동네에 있는 연약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이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함께 길을 찾는 공동체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꽃피는 봄날은 어떻게 오는가. 혼자서 봄을 맞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포함시킨 누군가와 나 사이에 꽃이 피는 것. 이천 작은 마을에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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