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바보들만 득실거리는 이 거대한 무대에
끌려 나온 것이 슬퍼서”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는 “과거에 난 영리했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려 했다. 지금의 나는 현명하다. 그래서 난 나를 바꾸기로 했다”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결코 바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개량(改良)시키기 위해 분주합니다. 그 결과 곳곳에서 불화와 반목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17세기 영국은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는 영리하지만, 신(神)을 기쁘게 하는 삶에 대해서는 무지한 권력가들의 횡포가 창궐하던 시기였습니다. 셰익스피어는 17세기 영국사회에 만연된 무지와 탐욕에 의해 유린되는 도덕의 붕괴를 <리어왕>(1608)을 통해 신랄하게 풍자합니다.

퇴임을 결심한 브리튼의 리어왕은 자신의 영토를 3등분하여 세 딸에게 나누어주려 합니다. 그러나 방법은 딸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애정의 크기’에 따라 왕국을 분할해 상속하는 것으로, 후임권력자를 선출하는 방법으로 너무나 치졸하게 나타납니다.
리어왕은 세 딸을 불러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말’로 표현하라고 합니다. 리어왕에게는 ‘말(언어)’이 ‘마음’보다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당시 통치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간사한 혀’로만 충성을 약속하는 간신(奸臣)들에 대한 풍자입니다.
리어의 명령에 따라 첫째 딸 거너릴은 “아버지가 자기 눈빛보다 소중하고 생명과 자유보다 소중합니다”라고, 둘째 딸 리건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비할 때 다른 모든 기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고백합니다.
두 딸의 사랑표현에 흡족했던 리어는 가장 아끼는 셋째 딸 코델리아의 고백에 큰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코델리아가 “저는 자식의 도리로 왕을 사랑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아무 말씀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여 그를 실망시킵니다. 리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라고 분노하며 코델리아 몫의 토지를 두 딸에게 나누어주고 코델리아를 프랑스 국왕에게 시집보내버립니다. 사실상 해외추방입니다. 이어 리어는 자신의 통치권과 지위까지도 첫째와 둘째에게 주고 ‘자신은 왕이라는 칭호만 지닌 채 수행기사 100명과 함께 두 딸의 집에 한 달씩 번갈아 머물겠노라’고 공표합니다.
리어의 어리석은 판단을 지켜보던 충신 켄트는 “막내따님이 폐하를 가장 적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낮아 빈 통처럼 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마저 빈 것이 아닙니다”라며 진언을 하다 추방됩니다.

그런데 리어 왕의 통치권과 재산을 모두 차지한 두 딸은 이후 돌변합니다. 큰 딸은 아버지에게 수행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라고 요구하며 박대하고, 둘째 딸은 언니보다 더 냉정한 태도를 보이며 수행원 수를 25명으로 제한하겠다고 통보합니다. 비로소 두 딸의 실체를 알게 된 리어는 비바람이 내리치는 황야로 나가 “아, 리어여! 어리석음은 불러들이고 귀중한 분별력은 내쫓아버린 이 머리통을 부수어 버려라”라고 절규합니다. 이런 리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카이우스라는 인물로 변장한 충신 켄트뿐입니다.

리어왕이 두 언니로부터 홀대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코델리아는 남편인 프랑스 왕을 설득하여 군대를 일으킵니다. 리어왕의 또 다른 충신 글로스터에게도 프랑스 측이 보낸 밀서가 당도합니다. 그러나 글로스터의 서자 에드먼드가 이 밀서를 리어왕 둘째 딸 남편인 콘월 공작에게 전달하며 아버지를 역모죄로 밀고합니다. 그러던 중 글로스터 백작을 취조하던 콘월 백작이 글로스터의 눈을 빼다가 하인의 칼에 찔려 죽게 되고, 에드먼드를 연모해온 큰 딸 거너릴은 혹시 과부가 된 동생에게 에드먼드를 빼앗길까 두려워 동생 리건을 독살합니다. 이후 큰딸은 남편 올바니 공작으로부터 자신의 불륜을 추궁받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한편 실성한 리어를 찾아낸 코델리아의 정성에 의해 리어는 제정신을 찾게 되고 과거 자신의 어리석고 행동에 대해 용서를 빌고 코델리아와 화해합니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브리튼 군에 패하고 코델리아는 사형에 처해지며, 이 사실을 알게 된 리어 왕은 괴로운 나머지 뒤따라 숨을 거두게 됩니다.

삶의 나이테가 두터워져 어른이 된 지금, 가끔 “현명을 갖추지 못한 채 나이 드는 것은 재앙이다”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 속의 늙은 리어의 절규가 가슴을 찌릅니다. 스스로 ‘나는 제 나이에 어울리는 현명과 총명, 곧 통찰력을 장착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라는 답변을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이 시대는 악마적 재능을 지녔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에서 살아남으려면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속삭임에 설득당한 리어왕의 두 딸이 거침없이 활보하는 ‘폭력의 시절’입니다.
그러나 희곡 <리어왕>은 악마와 손을 잡은 인물들의 마지막이 잔혹한 재앙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예언적 필치로 그려냅니다. 따라서 유신론적 변증가 C.S. 루이스가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악을 발전시켜 선을 만들 수 없다”라는 문장에 동의하는 사람, 삶의 단위를 ‘선’이라는 하늘어휘로 채우기를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서재에서 <리어왕>을 소환하여 정독하시길 감히 권해드립니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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