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을 하는 그대에게

상담실에 찾아온 40대 중반의 그녀는 몹시 지쳐 보였습니다. 매일같이 그녀를 다그치고 닦달하는 누군가에게 시달리는 듯했지요.
“원래 제가 걱정이 많은 사람이긴 한데, 요즘은 정말 아무 것도 못하겠어요. 살 수가 없네요.”

첫 마디와 함께 눈물을 쏟아내던 그녀는 20대에도 걱정과 불안이 많았지만, 아이를 낳고 가족이 늘면서 걱정도 함께 늘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차 사고는 나지 않을까, 첫째가 친구들한테 왕따라도 당하지는 않을까, 막내가 유치원에서 뜨거운 물에 데기라도 하지는 않을지, 나쁜 친구를 사귀지는 않을지, 오늘 춥게 입고 갔는데 내내 떨다가 감기라도 걸리는 건 아닐까, 손톱을 안 깎아 보냈는데 친구와 놀다 상처라도 입히는 건 아니겠지. TV를 켜면 온갖 사건사고 얘기에 불안만 더 커져가고, 눈을 감고 누우면 온갖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잠도 안 오고, 피곤해진 몸과 충혈된 눈으로 지내다보니 머릿속은 항상 뿌연 느낌이라 했지요.
“남편은 낮에 집이 비면 낮잠이나 좀 자라는데, 저라고 안 그러고 싶겠어요.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니 잠은커녕 짜증만 나고, 식구들한테 잔소리만 늘어서 아이들도 절 슬슬 피해요.”

미리 지나치게 걱정하세요?
실은 아무 일 없이 평온한 하루하루인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사소한 걱정들로 마음이 괴로워지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일상에 대한 걱정이 끝없이 번지고, 도저히 멈출 수 없을 정도의 불안이 6개월 이상 계속될 때, 심리학에서는 이를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로 진단합니다.
범불안장애를 겪는 이들은 모호한 사건들도 개인적인 위협으로 해석하다 보니 근육이 항상 긴장되어 있고,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 때문에 초조, 수면 부족, 만성피로가 쌓여 집중력도 떨어지지요. 이들은 가만히 웅크리고 있기만 한 것 같지만, 머릿속 사고 활동이 대단히 치열합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다양한 걱정을 예측하고, 고려하고, 걱정하다보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여력이 없을 정도이지요. 삶이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는 그녀가 몹시 지치고, 아무 것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채 상담실을 찾은 것은 그러한 이유입니다.

걱정에 몰두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숨쉬며 실제로 부딪히고 만나야 할 생생한 인생의 현장들을 가로막아 섭니다. 어쩌면 우리를 흔들리게 할 수도 있고, 위험을 맞닥뜨려 펄떡이는 불안을 스스로 진정시켜가며 위험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미루고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미리 지나치게 걱정하기’가 등장하는 것이지요. 이들은 걱정과 불안을 친구처럼 곁에 껴안고 사는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이라는 감정, 불안감을 자아내는 심상에 수반되어있는 정서들을 사실 회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걱정 기록지에 적어보았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삶인데도, 자기 안의 걱정에 치여 찾아온 그녀는 조금씩 용기 내어 자기 안의 불안을 한 번 껴안아보기로 했습니다. 끝없이 사소한 걱정거리를 만들어, 마음속을 부유하는 불안에 스스로 치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제대로 붙잡아 불안을 깊이 경험해보기로 한 것이지요. 불안을 들여다볼수록 어린 날의 두렵거나 고통스럽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시도 끝에 ‘불안’이란 그녀가 생각한 만큼 위험하거나, 자신을 곤경에 빠트리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불안이라는 감정 덕분에 오히려 삶을 안전히 지킬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떠오르는 사소한 걱정들은 ‘걱정 기록지’에 하나하나 적어 과연 현실적인 걱정인지, 나와 가족을 지키기 위한 효율적인 고민인지를 따져보고, 아니라면 그 불안에 맞서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던 그녀는 이제 이런 저런 일들로 복잡한 이 삶에 조금씩 웃음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마구 어지럽혀진 거실 한가운데 누워, 구름이 바람에 지나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지만, 걱정하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그 순간’을 그대로 느끼면서 말이지요.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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