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홈>

2017년부터 만 4년간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스위트 홈>이 작년 1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괴물 공포 장르라, 끔찍한 장면은 물론이고 피칠갑 또한 다반사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릴 드라마이지만, 흥행 기록만 보고, 이 드라마를 소개하는 건 아닙니다. 이 작품 안에는 우리가 응당 고민해 봐야 할 이 시대에 대한 여러 가지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다양한 인간 군상 생존기
학교 폭력과 왕따로 은둔형 외톨이였던 고등학생 현수가 끔찍한 사고로 가족 모두를 잃고 홀로 ‘그린 홈’이라는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이야긴 시작됩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현수는 자포자기 상태로 PC게임에만 빠져 지냅니다. 그러면서 생을 마감할 계획을 세우지요. 그런데 그 아파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현수네 옆집 여성이 괴물로 변한 걸 시작으로, 아파트 곳곳에서 괴물이 출몰합니다. ‘그린 홈’ 주민들은 아파트를 빠져나가려 하지만, 누군가 아파트를 폐쇄해 꼼짝없이 그 안에 갇힙니다. 게다가 외부와의 통신마저 끊기지요. 정문 셔터를 겨우 열 수 있었으나, 밖에 더 무서운 괴물들이 깔린 걸 보고 이번엔 주민들 스스로가 아파트 문을 걸어 잠급니다. <스위트 홈>은 그렇게 아파트에 갇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개인의 욕망이 괴물화
얼핏 보면 그 흔한 서양의 ‘좀비물’과 유사한 전개이나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괴물은 좀비류가 아닙니다. 따라서 감염되지도 않고, 그 형태 또한 천차만별이에요. 영화 속에서 현대과학 혹은 환경파괴의 부산물로 흔히 그려지는 ‘좀비’가 영화 외적으로 현대인의 비인격적 본능을 상징하듯, 이 드라마의 ‘괴물’ 또한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합니다.
<스위트 홈>에선 평소 가지고 있던 욕망이 그 사람의 육체를 괴물로 만듭니다. 운동중독이었던 남성은 근육괴물로, 극단적 다이어트로 배고픔에 빠져 있던 여성은 식탐괴물로, 사고로 갓난아이를 잃은 엄마는 태아괴물로 변하는 식이에요. 그리고 그 괴물 대부분은 식인 습성을 보이며 인간들을 죽여 나가요. 개인의 욕망이 괴물화 되어 인간을 공격하는 겁니다.
욕망이 내재되어 있을 땐 별 탈 없지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 외면화되면서 사람을 가차 없이 죽여 나가는 구도는, 욕망의 무한경쟁에 매몰된 현대사회에 대한 노골적 풍자입니다. 즉, 남을 짓밟아야 내가 살 수 있는 현대사회의 야만성을 그린 거지요. 하나 더해서, 이 작품에서 괴물만 인간을 위협하는 건 아닙니다. 아직 괴물화 되진 않았지만,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주민들 개인 또한 공동체를 위협합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가면 이젠 괴물보다 인간이 더 무섭게 그려져요. 이 드라마에서 진정한 악당은 바로 인간 욕망 그 자체인 셈이니까요.

욕망과 소망
그렇다면 드라마에서처럼 욕망과 공동체는 상생할 수 없는 것일까요?
시인 김소연은 <마음사전>에서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결론에 다다른다고 말하며 ‘평안’과 ‘편안’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평안’은 타인과 함께 누리는 공동의 가치가 될 수 있지만, ‘편안’은 타인의 불편함 혹은 희생을 대가로 치른다고 말입니다. 편안과 마찬가지로 욕망 또한 타인을 착취하고 우월적인 지위를 점하려는 심리에서 출발합니다. 거기에 더불어 사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평안은 없습니다. 편안, 즉 나만의 편리와 안전만 있을 뿐이죠. 그런 욕망을 혹시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의 모토로 삼고 있지 않았는지요.
그런데 욕망과 비슷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를 지닌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소망입니다. 둘 다 무언가를 바라는 의지를 담은 단어이지만, 소망에는 물질적인 결과를 전제하고 있지 않기에, 거기엔 경쟁·질투·이기·파괴가 없습니다. 대신 더불어 함께하는 꿈과 희망이 담겨있습니다. <스위트 홈>은 욕망에 의해 잠식된 소망의 가치를 제고하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아름다운 동행’의 힘은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공통의 소망이 아니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작품 제목과 달리 이 드라마 속에 아름다운 가정은 없습니다. 부부·부자·남매 관계가 철저히 파괴된 끔찍한 가족들뿐입니다. ‘스위트 홈’은 욕망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욕망을 내려놓아야 이뤄질 수 있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그저 그걸 소망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을 뿐이란 걸, 역설적으로 <스위트 홈>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ps. 국어교사 정재헌이라는 캐릭터가 꽤 흥미롭습니다. 아주 선하고 차분한 얼굴로 뜬금없이 기독교 신앙을 설파하는 그는 상당히 이질적입니다. 그런데 정재헌은 자신의 빗나간 과거를 바로 잡기 위해 끝까지 희생하며 헌신적으로 움직여요. 요즘 사회성의 결여로 지탄 받고 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많은 걸 질문하게 하는 인물입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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