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Reasons Why>
Jay Asher 지음, Razorbill, 2017년
LexileⓇ지수 : 550L (리딩 난이도 척도)


‘외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영어로 간행하는 신문이 아닌데, 영어로 된 책을 소개해도 괜찮은 걸까?’하고 의문을 품었으나, 결국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일찍부터 학원을 전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터라 선택의 여지 없이 시작한 소위 ‘아빠 학원’을 몇 년째 이어가다 보니 적지 않은 시행착오에 따른 나름의 교육 철학 같은 것도 생겼다. 아빠인 나는 선생님에서 페이스메이커 혹은 가이드 정도로 역할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학창 시절 나의 실수를 아이가 그대로 따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영어를 공부할 때도 시험 점수를 잘 받으려고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도서관이 드문드문 문을 열어 안 보던 책들까지 자세히 살펴보는데, 영어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적지 않은 분량의 영어 원서들이 별도의 공간에서 여러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능력에 따라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도록 책마다 단계별 태그가 붙었고, 각종 오디오 자료들까지 있었다. 도서관에서 적지 않은 정성을 기울인 게 느껴지는데, 그동안 나는 이 공간에 무심했던 것 같다.

뉴스에 수시로 등장하는 ‘4차 혁명’,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등과 같은 용어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용케도 요즘 내가 영어에 고민이 많다는 것을 눈치채고,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유학이나 어학연수 한번 다녀오지 않은 순수 국내파가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동영상을 추천한다. 또 매일 듣는 라디오에서는 새로 문을 연 ‘오디오 어학당’을 광고하고, 온라인 서점에서는 나 정도 수준의 독자에게 알맞은 영어 소설책을 소개한다. 덧붙여,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동안 어느 정도 수준의 공부를 했는지 조사하는 간단한 테스트와 설문 과정을 거친 후 나의 읽기 능력을 가늠한다.

이렇게 알음알음 알게 된 정보들을 취합하여 비교적 쉽고, 흥미진진하고, 아이와 함께 읽기 좋은 도서를 골랐는데, 그게 바로 <13 reasons why>이다. 책 제목을 번역하자면 ‘13가지 이유’ 정도가 될 텐데, 알고 보니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제목의 미국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미드’로 만들어질 만큼 소설이 재미있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더욱 기대감이 생긴다.

주문한 책이 언제 오려나? 빨리 읽고 싶은데, 원서라서 더 오래 걸리나? 재고가 없어서 배송이 늦어진다는 문자를 받은 끝에 드디어 책이 당도했다. 처음 몇 페이지는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휴대전화 영어사전과 번역기 앱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 문장, 한 문장씩 읽다 보니 다행히 재미가 붙는다. 책 제목처럼 아주 사소한 사건이 ‘이유’가 되어 좀 더 큰 사건을 불러일으키고, 좀 더 큰 사건이 ‘이유’가 되어 더욱 큰 사건이 벌어진다. 틈날 때마다 손이 가는 ‘새우깡’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청소년 물이지만 ‘막장 드라마’ 같은 면이 있어서 중독성이 생긴다. (영어 글자 책에 중독이 된다는 게 내게도 가능하단 말인가?) 내용이 너무 궁금하면 ‘미드’로 얼른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내 평생 첫 영어 소설책, 온전히 내 힘으로 마지막까지 읽어서 결말을 확인하고 싶다. 코로나로 더욱 깊고 깊어진 겨울, 영어로 된 소설을 읽으면서 학창시절의 열심과 호기심, 그리고 이제라도 제대로 된 공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기분 좋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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