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_2020년 봄호> 이슬아 씀

“아, 시원하다!” 중학생 큰아이가 칼칼한 동태탕을 맛보면서 저도 모르게 내뱉는 감탄사에 이 녀석이 벌써 ‘아재’ 입맛을 알만큼 컸구나 싶다. 외출할 때는 머리에 물을 묻히며 드라이를 하고, 가슴에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옷을 피하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인가?
어릴 때 나는 아버지를 보면서 40대는 사회를 이끌어 가는 세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40대가 되고 보니 나는 이 시대를 주도하기는커녕 내 한 몸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어쩌면 당시의 아버지는 나이에 걸맞게(?) 어른인 척 연기하는 인생을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옛사람들은 열세 살만 되어도 출가하여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다는데, 나라는 인간은 ‘나만 이러는 거 아닌데?’라는 유치한 처세술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몸뚱이까지 젊은 건 아니어서 팔다리는 움직일 때마다 ‘우두둑’ 소리를 내고, 눈은 금방 침침해져서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해도 스마트폰 게임조차 마음 편히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요즘은 머리카락마저 많이 빠져서 정수리가 점점 훤해지고 있는데, 그나마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은 염색한 은발을 닮아간다며 위안을 찾고 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내게도 ‘회심(回心:마음을 돌이켜 먹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회심이란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내가 달라지는 것이니, 여기에는 과거의 나와 진지하게 직면하는 용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일간 이슬아 2020년 봄호’에 실린 이대목동병원 응급실 청소 노동자 이순덕 님과의 인터뷰 글은 적극적으로 어른이 되는 방법을 제시한다.

슬아 : 다 치우고 나신 자리를 돌아보시나요?
순덕 : 돌아보죠. 내가 치운 데를 한 번 이렇게 둘러보는 거예요. 말끔하게 싹싹 치운 걸 보면 기분이 좋지요. 저는 일하면서 실수 잘 안 해요. 의사 선생님들은 기술이 어려우니까 실수할 때가 있을지 몰라도 나는 청소 일이니까 완벽하게 해요. 남의 자리에서는 일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그저 내가 맡은 일만은 완벽하게 하는 거예요.

순덕 님은 “사는 게 너무 고달팠어요”라고 말한 뒤 “그래서 더 힘든 사람을 생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 두 문장이 나란히 이어지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슬아 님은 “울면서도 완벽하게 청소할 수 있을 때까지,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없이 주변을 돌볼 때까지, 내 고달픔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이의 고달픔으로 시선을 옮길 때까지 내 노동으로 일군 자리에 다른 이를 초대할 수 있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 어른이 되어가고 싶다”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하고 다소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으로 지내다 보면 최소한 내가 지금보다는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겨서 안심이 된다. 그리고 비로소 ‘어른’이란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간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존경의 단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서점에 가지 않고도,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다. 한 달에 스무 편, 월 1만 원(편당 500원)으로 ‘일간 이슬아’를 한 편씩 작가로부터 직접 이메일로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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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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