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 서울식물원>

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끼고 본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찾아서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높아진 구름과 결이 달라진 선선한 바람은 가을이라. 이런 계절에 상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자니 어디를 가도 답답하고 불안한 게 현실이다.
최근 코로나로 수도권 안의 모든 공공실내시설은 거의 휴관이다. 그래서 갈 곳이 제한된 시민들은 자연스레 넓고 쾌적한 야외를 더 찾게 되는데 일상에서 쉼과 여유를 누릴 만한 곳이 필요한 이때에 멀리 나가지 않아도 그런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다양한 풍경 지닌 서울식물원
100곳 이상의 기업들이 밀집한 강서구 마곡업무지구 안에는 여의도공원 면적의 2.2배에 달하는 서울식물원이 있다. 주제원, 열린숲, 습지원, 호수원의 구성으로 전체를 자세히 둘러보는데 2시간 이상 걸린다. 현재는 실내 온실만 제외하고 야외 시설은 이용 가능하다.
보통 수목원도 개장하고 3~4년은 지나야 볼만한 볼륨이 생기는데 이곳은 1년 만에 제법 잘 갖춰진 식물원의 모습이다. 식물원을 부지런히 가꾼 일손들의 노고가 보인다.
지하철을 이용해 마곡나루역에서 나오면 넓은 잔디광장을 맞이한다. 코로나를 잊을 만큼 여유 있고 따스한 풍경이다. 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가족, 친구, 연인들의 사랑스런 모습들이 보인다.

잔디광장을 지나 정원들을 지나면 호수공원이 나온다. 데크길과 흙길로 조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흙길이 맘에 든다. 너무나 익숙한 도심의 포장길이 아닌 부드럽고 따뜻한 색의 흙길은 걷는 속도와 감성부터 다르다. 호수 너머 업무단지의 빌딩이 있는 풍경이 꼭 여의도 같기도 하다. 호수 주변의 수초와 백로들의 풍경은 도시를 떠나 먼 곳을 온 기분이다. 곳곳의 벤치에는 음료와 간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가을의 오후를 잘 누리는 듯하다. 유독 아이를 데리고 나온 아빠들도 많이 보인다. 코로나로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익함도 생겼다.

사람이 소중하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수없는 절망과 어려움 속에서 생존을 해왔다. 그리고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 작금의 코로나도 고통의 한 점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통해 극복하고 진화할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있다. 현대사회의 욕망의 속도에서 지나치고 놓치고 무시해왔고 핑계 댔던 것들을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잠시 멈추게 하고 있다. 욕망이 제한이 되고 속도가 느려지니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내 자신이고 가족이다. 인생에 어려움에 처할 때 늘 지나고 보면 가족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친족도 있지만 선택적으로 구성된 가족들도 있다. 가족 같은 관계, 이런 관계를 갖고 사는 사람은 풍족한 인생이다.
요즘 같은 제한된 공간, 만남의 시대에는 믿을 수 있고 지켜줄 수 있는 가족, 가족 같은 사람들이 정말 소중하다. 그리고 더 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고 싶다.

멍때림의 시간
유독 공원에는 홀로 벤치에 앉아 멍때리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사실 예전에는 멍때리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시간을 낭비하는 듯, 무기력한 듯, 무능력한 듯 이 바쁜 세상에….
그러나 과학적으로도 멍때림은 뇌를 세팅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과잉 집중의 시대에 그것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멍때림이라는 집중을 통해 정신적 해독과 회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묵상으로,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면 좋겠다.
공원의 석양은 하루의 선물과도 같이 따스하고 포근하다. 퇴근 후 공원을 걷는 것이 중독이 될 만한 시간의 풍광이다. 이 시간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멍때리고 싶다. 그전에는 무엇인가 바라고 요구하고 판단하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바라보며 그 존재에 집중하며 그 자체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보고 싶다. 또한 내 자신에게도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말하며 하늘을 보고 감사를 드린다.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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