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 대한 단상 : 혐오와 차별을 넘어

조던 필 감독은 <겟 아웃>이라는 영화를 2017년 오바마 퇴임 3일 후, 즉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3일이 지난 시점에 세상에 내놓습니다. <겟 아웃>은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에 대해 이성적으로는 반성하면서도, 과거 주인으로의 특권의식과 혐오의 감정은 그대로 취한 백인 사회의 정신 분열적 양태를 신랄하게 꼬집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작품 초중반의 불쾌감을 기억할 겁니다. 인종적 선입견이 없는 ‘것처럼 포장된’ 인물들이 선사하는 찝찝함은 묘한 공포감을 일으키기까지 해요. 여하튼 상당히 비정상적인 그림들로 출발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인종 혐오를 노골적으로 폭발시키는 후반부가 관객 입장에선 차라리 편합니다.

그동안 미국 사회가 그랬던 겁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고고한 척 위선으로 덮었던 모습이 부자연스럽지 않았나요? 경찰의 폭력적인 체포과정 중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뛰쳐나와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외치는 지금이 차라리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문제를 직시해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이니까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이런 목소리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벨기에에서는 과거 식민통치시기에 수천만 명의 아프리카인을 학살한 국왕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이 강제로 철거되었어요. 히틀러와 스탈린을 뛰어넘는 학살자의 동상이 버젓이 아직까지 세워져 있었다는 게 의아스러운 면이었죠.

피부색으로 차별
인류에게 있어서 인종차별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습니다.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안족이 고대 인더스 문명을 제압해, 인도 사회를 뿌리째 흔들어버립니다. 하얀 피부의 아리안족이 짙은 갈색 피부의 인도 원주민들을 지배하게 되면서,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인식이 인도인들 뇌리에 깊숙이 새겨진 거예요. 이게 바로 인도 카스트제도의 시작입니다. 또한 유럽 사회는 아시아·아프리카 등과 수천 년간 교역해오면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하는 상상의 지형도를 그들 나름대로 구축해왔습니다. 서양은 밝고·이성적이고·체계적이고·현실적인 반면, 동양(혹은 비서양)은 어둡고·감정적이고·어지럽고·몽환적이라는 구도 등을 말입니다.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 패권을 쥐게 되면서, 그들이 세운 논리를 전 세계에 퍼뜨리게 되죠.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나뉘어 살 때는 별문제 없었지만, 식민지 건설을 통해 섞여 사는 지구공동체 시대가 열리면서, 차별 현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차별의 기본 요체는 바로 ‘피부색’이에요. 이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처럼 분명한 구별이니만큼, 별 노력 없이 쉽게 배타의 근거로 활용됐습니다.

미국의 경우 1863년 노예해방선언이 있었지만,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건 그로부터 100년 이상이 지나서입니다.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 기간 중,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에서, 과거 노예였던 부모의 후손과 주인이었던 부모의 후손이 같은 식탁을 마주하고,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세상을 소망했습니다. 1968년에 그가 죽은 후, 지난 50여 년간 그의 꿈이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권리는 그렇게 쟁취했으나, 대우까지 받아낸 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는 차별 없는 평등 세상을 외치지만, 인종적 혐오는 남았으니까요.

미국 백인 사회는 흑인에 대해 신체적으로는 열등감을, 지적으로는 우월감을 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지적 우월감마저도 오바마 대통령으로 인해 흔들리면서, 백인 사회의 나약함이 드러나게 되었죠. 그래서 결국 혐오와 차별에 기반을 둔 트럼프라는 기묘한 권력을 탄생시키게 된 것입니다. 혐오는 내부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외부에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대표적 심리입니다. 차별 또한 자신의 존재 이유가 취약해지니,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멸시하면서 만들어집니다. 전부 ‘나’를 지키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행태인 거죠.

과거 우리 한국 사회가 동경해 마지않던 미국의 수준이 어떠한지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인권 시위 광풍을 통해 우리는 잘 목격했습니다. 외부에서 변명거리를 찾으며 우왕좌왕하는 지금 미국의 현실이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는 겁니다. 잘 나갈 때 관용적인 건 미덕이 아니죠. 위기를 어떠한 자세로 임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그때 외부에서 희생양을 찾는 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대한민국이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도 잘 살펴보세요. 초기엔 우리들 사이에서도 어서 국경을 폐쇄하라는 목소리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린 국경을 닫아 다른 나라에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는 가장 어려운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차별과 구별, 그리고 혐오 없이 더불어 간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살 길입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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