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정말 그런가?

사람들은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하곤 해.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절박함이 없다고 욕을 하지.

‘돈을 버는 것’만이 ‘일’인 걸까.
나는 오늘 하루도 고되게 보냈는데.
돈을 못 번다고, 왜 욕을 먹어야 하지.

나는 오늘도 고된 일을 했는데.
‘일을 구하는 일’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내게 일을 달라는 일’을 했는데.

- ‘일하는학교 청년 글쓰기 모임’ 문집 중에서


몇 해 전, 일하는학교의 글쓰기 모임에서 한 청년이 썼던 글이다. 그 청년은 심리적 어려움과 독특한 개성 때문에 20대 후반이 되도록 변변한 취업이나 알바경험이 없었고, 매일 면접에서 떨어지고는 상처받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청년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취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일을 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주변사람과 친구들의 비난과 폄하였다.

일하는학교를 찾아오는 청년들의 삶은 ‘특수’하다. 부모가족과 한 집에 살면서 고등학교·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다가 취업하고 결혼을 하면서 자립을 해나가는, 그런 전형적인 청년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거나, 부모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거나, 중학생 때부터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해왔거나,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아이를 낳았거나…. 때로는 이런 특수함과 어려움들을 복합적으로 경험해온 이들도 많다.
몇 해 전, 이런 청년들을 대상으로 ‘마음건강’에 대한 작은 연구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300명을 일일이 만나 설문조사하고 20명을 심층면담 해보니, 사회일반 집단에 비해 훨씬 높은 우울과 불안, 심리적 위기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칭찬 받아본 기억이 없어요.”
“검정고시 합격했는데, 아무도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이 청년들을 괴롭히는 우울과 불안은, 단지 돈이 없다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거나 일을 구하기 어렵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빈곤이나 가족의 부재라는 상황과 싸워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노력과 결과물이 어떠한 형태로도, 그 누구로부터도 존중받거나 격려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주변의 관심과 칭찬, 격려에서 힘을 얻으며 성장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보통’이라는 기준에서 멀어져 살아온 청년들은 그런 경험을 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친구들은 남보다 더 모질게 나의 작은 실패들을 비난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해결하고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숙명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하거나 그저 그것들과 싸우며 살아가기에 급급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비난받거나 그의 노력과 삶이 가치가 덜하다고 말할 이유는 없다. 모든 사람의 출발점은 다르고, 각자의 다른 출발점에 맞는 존중과 격려가 필요할 뿐이다.

‘주경야독’하며 멋지게 난관을 극복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은 아니다. 때로는 ‘참아내기’, ‘버텨내기’ 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고 칭찬받아야 할 삶들이 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환경이지만 묵묵히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며 살아온 것, 외롭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버텨온 것, 그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도전하고 있는 것. 우리는 이 청년들의 고된 삶 자체를 존중하고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냉정한 평가와 조언만이 이 청년들을 돕는 방법은 아니다.
“고생 많았어.”, “잘 살아왔어.”
이런 말들이 그들의 삶에 더 큰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이정현
대학에 가지 않고 길을 찾는 청년을 위한 자립학교인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의 사무국장. 더듬더듬 길을 찾아가는 청년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다해 동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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