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담긴 식탁에서

김승범 기자가 직접 걸으며 오감으로 느끼고 본 특별한 공간을 하나씩 소개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사색이 있는 공간들을 찾아서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편집자 주>

늦은 저녁, TV를 볼 때면 소위 ‘먹방’이라 불리는 프로그램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요리하는 걸 즐기는 나로서는 어떤 방송보다 몰입도가 높다. 흥미 있는 레시피가 나오면 바로 따라서 만들어 먹을 만큼 요리는 내게 있어 가장 큰 취미이자 관심 분야다.

인생 첫 요리는 대학교 때 자취방에서 시작됐다. 늘 오고가는 기독동아리 멤버들에게 해준 김치볶음밥이었다. 신김치에 소세지, 양파, 마가린을 넣고 대충 볶아주면 맛있다고 바닥까지 누른 밥을 긁어먹던 인기메뉴였다. 그러면서 점차 카레, 김치찌개, 부대찌개, 제육볶음 등 메뉴가 늘어갔다. 서너 명이 모여 정말 먹을 것이 없을 땐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게 맛있었던 계란한판 프라이도 추억의 음식이다.

결혼 후에도 시간이 되면 자주 요리를 했다. 그때는 주로 기름진 재료인 치즈, 소세지, 고기가 주 메뉴들이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무럭무럭 살찌기 시작하여 비만까지 가는 미안한 결과를 만들었다, 그 즈음 잘못된 사업투자로 빚더미에 오르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 맛있는 반찬을 만드는 일이 숙제가 되었다. 당시 900원하는 소세지를 사서 파, 당근을 잘게 썰고 계란물을 입힌 소세지 계란부침은 그래서 자주 해주던 메뉴였다. 지금도 마트에서 그때 먹던 소세지를 발견하면 반갑기까지 하다.
그후 좋은 기회로 자연식 요리전문가와 사진촬영으로 요리책을 만들면서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음)을 알게 되었고, 음식에 대한 철학을 배울 수가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들에게 좀 더 나은 식생활과 건강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게 있어 주방은 사색과 모방과 창작의 공간이다. 요리의 시작은 음식을 먹는 대상을 생각하며 시작이 된다. 대상의 상태, 선호도, 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메뉴를 구상한다. 메뉴가 결정되면 즐거운 상상으로 제철 재료, 신선한 재료를 고른다. 조리 방법을 정하고 그에 적합한 조리도구를 준비한다.

음식은 어떤 식재료를 어떻게 쓰며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조리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완성된 요리는 가장 맛있게 보일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맛있게 음미하며 먹는다. 마음은 고상하여지고 성취감에 행복하기까지 한 시간이다. 이러한 과정을 좋아하지 않으면, 가치를 느끼지 못하므로 매우 귀찮은 일이 된다. 그냥 맛있는 한 끼 사먹는 것이 더 편하다. 혼밥을 할 때면 귀찮음으로 대충 먹게 된다. 간단히 차리더라도 날 대접한다는 정성을 갖고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내게 이로운 좋은 음식이 된다. 요리를 하면서 화가 나있거나 속상하면 잠시라도 손을 멈추고 마음을 추스른다. 행여 마음의 독이 음식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 피하는 마음에서다.

식당 음식이 맛은 있을 수 있어도 어머니가 정성스레 차려준 음식과 다른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그릇에 담긴 음식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 요리가 서투셨던 어머니는 내게 자주 해주시던 메뉴가 있다. 날달걀 노른자에 간장, 마가린 넣고 비벼먹던 밥이다. 지금도 그 맛과 향이 오롯이 기억되는 게 엄마의 밥상이다. 그런 연유인지 나도 아들에게 음식을 해 주면서 은근히 아빠표 요리를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아들도 한식 자격증을 땄으니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밥 한 끼, 사랑으로 지을 수 있는 마음 하나 준비하고 살면 좋겠다.

6년 전 동네에서 사귄 후배가 있었다. 오랜 시간 경호업무를 해왔던 늘 묵묵한 상남자였다. 우연히 생일을 알게 되어 깜짝 선물로 집에 초대했다. 조금 무리해서 한우 양지를 넣은 미역국에 칠첩반상을 차려 주었다. 후배는 예상치 못했던 터라 밥상을 보고는 눈만 깜박이며, 말없이 많이 먹었다. 그리곤 ‘우리 어머니도 생일상 안 차려주셨는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어두운 가족관계 얘기를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이 더 애틋했다. 이후 가는 곳마다 ‘형님이 미역국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고 자랑을 했다.
그런 후배가 1년 뒤 다리수술 중 대동맥 과다 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의료과실을 충분히 따질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부모님들은 이상하리만큼 서둘러 합의하고 장례를 치렀다. 허무한 죽음으로 후배 생각만 하면 아직도 마음이 먹먹하다. 그나마 미역국 한 그릇이 후배에게 한 점의 위로라도 남길 수 있음에 아프지만 감사하다.

오래전부터 행복한 식사 시간을 파는 식당을 꿈꾸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도 있지만 꿈은 꿔본다. 그러기에 내가 먼저 행복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일상에서의 밥상부터 행복하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날 위해, 당신을 위해 사랑의 레시피를….

사진·글 =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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