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여성 내담자를 만난 일이 있다. 신경과, 이비인후과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다 받아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다보니, 혹시 마음의 문제인가 싶어 상담실을 찾았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내담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주변에서 떠밀듯이 가보라고 해서 상담실까지 오긴 했지만, 사실 특별한 고민이나 스트레스는 없거든요.”

직장에서 한창 바쁘게 일하며, 마음 부대끼던 20대와 30대 초반을 지나, 이제 10년차에 접어든 회사에서 그녀는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었다. 크게 속상할 일도 없고, 괴롭힐 상사도 없고, 그야말로 안정적인 시기를 지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아무 탈이 없다가, 오히려 휴일, 모든 걸 마치고 홀로 퇴근하는 길이면 메스꺼움을 느낄 정도의 어지러움에 아무 것도 못하고, 가끔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상담실을 오긴 했지만, 딱히 이야기할만한 큰 문제가 없어서 난감하네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제안했다.
“회사에서 출발해 상담실 문을 열기까지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셨죠? 당분간은 그 한 시간의 머릿속만 공유해보는 건 괜찮으시겠어요? 머릿속을 건드리는 아주 사소한 생각들, 잠깐 스쳤다가 사라지는 생각도 상관없으니 잘 기억해서 한 번 나눠보지요.”

지극히 사소한 생각들을 나눈 몇 주를 지나오면서, 그녀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인풋(input)과 자극이 있는지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회사 일, 사람들의 평가 섞인 말,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결정 내리지 못한 선택들, 잠시 열어본 SNS에는 나만 빼고 다들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친구들의 근황, 마음속에 일어나는 의기소침과 질투심, 몇 시간 동안 접속하지 않은 포털에 새로 뜬 검색어, 나만 몰랐나 싶은 정보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업데이트. 사람들이 TMI(Too Much Information)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칭찬이라 여겼다고 했다.

사회를 살아가는 데 충분한 정보란 분명히 장점이 있다. 그러나 충분함을 넘어서 지나치게 많아진 정보는 ‘예민성’과 ‘스트레스’를 높인다. 정보란 생각뿐 아니라 감정을 함께 가져온다. 그 정보들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면 상관없겠지만, 그 선을 넘치면 미처 다루지 못한 생각과 감정들은 이상 신호를 보내 신경증적 증상 혹은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불안은 심인성 어지럼증의 정신 역동학적 체계화에 중요 구성 요건이 되며, 어지럼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우리에겐 뇌의 신경망을 잠식할 만큼의 너무 많은 인풋이 있고, 그 많은 자극과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들은 정신적 피로를 남긴다. 그로 인해 우리의 감정은 우울, 불안 등의 신호를 통해 외부세계에서 보내는 과도한 자극을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무조건 차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넘치는 정보에는 스위치를 가끔 ‘끄는’ 기술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마다 켜지는 스위치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지쳐서 어지럼증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스위치가 있는지, 나를 소모시킬 정도의 자극이 작동하려고 하는 것을 스스로 막을, 스위치 끄기의 방법들- 예컨대, 간단한 산책, 묵상과 같은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끝이 없는 인풋의 세계에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하루를 단정하게 해주는 힘은 그 곳에서 시작된다.

위서현
전 KBS아나운서.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 객원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만남의 힘>, <뜨거운 위로 한그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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