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어디까지 함께 걸어야 하는 걸까. 함께 걷다보면, 어디서부턴가는 스스로의 힘으로 걷게 될까.
‘윤희’는 이제 서른 살이다. 취업은 커녕 1년 이상 알바를 해본 적도 없는 이 무직·무업청년의 삶이 암담하고 답답했다. 변하지 않고 극복하지 못하는 그런 윤희에게 차츰 지치고 화가 났다.
처음 만났던 때 윤희는 열여섯 살의 그런대로 총명한 아이였다. 사진과 영상으로 자신과 주변 세계를 그려내는 독특한 시선과 감수성에 여러 사람들이 기대를 가졌었다. 대학을 보내려고, 예술가로 키워보려 했고, 직접 월급을 주면서 단체의 상근자로 키워보려고도 했다. 멘토도 연결해주고 마음 좋은 사장님을 찾아 취업할 곳도 연결해 주었었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되도록, 윤희는 우리가 애쓰고 이끌었던 길들 어느 곳으로도 가지 못했다. 윤희는 가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가지 않는 걸까.

윤희의 삶은, 그동안 만나온 ‘위기 속의 청년들’ 중에서도 유난히 험난하고 기구했다.
말도 트이기 전에 엄마가 집을 떠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자살했다. 아주 작고 허름한 집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가난하게 살아가야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병을 앓게 되었고, 학교를 그만두며 몇 년 동안 정신과에서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다.
스무 살 무렵엔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작고 허름한 집에 불이 나 더 이상 살 곳이 없었다.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고 윤희는 지인의 집이나 여관 장기투숙방에 몸을 맡기는 불가피한 자립이 시작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자립을 시도할 무렵. 망상과 환청이 두 번째로 발병했다. 또 다시 폐쇄병동에 입원해 2년을 보냈다. 면회를 오고 간식비를 넣어줄 이도 거의 없었다.
어렵게 퇴원을 한 후 지역 복지단체의 도움으로 여성 쉼터에 살면서 다시 자립을 시도했다. 사회적 기업들이 일할 기회를 주기도 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실력을 키워갔다.
이번에는, 정말 이번에는 윤희가 사회 속에 자리를 잡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던 스물다섯 살 쯤, 망상과 환청이 세 번째로 발병했다. 비틀거리며 고속도로를 걷다가 경찰에 발견되어 다시 입원을 했다. 그리고 또 1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입원할 때마다 이 아이의 총명함은 반 토막이 났고, 멍하게 허공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입원과 퇴원. 그 시간들은 윤희가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던 작은 것들조차 잃게 했다.
윤희는 오늘도 어제처럼 전화를 걸어온다. 간신히 윤희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알바 면접 세군데 봤다구요.”
“그래, 알았어.”
“…잘했다고. 말해주세요.”
“잘했다고…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꼭 말을 해야 아니…”
“불안해요. 잘하고 있다고 누가 확인해주지 않으면. 내가 잘 살지 않으면, 사람들이 또 나에게 실망하고 떠나버리니까요.”

윤희를 칭찬하기가 어렵다. 열여섯 살, 혹은 스무 살 무렵의 반짝이던 윤희를 기억하기에 말이다. 윤희가 다시 그렇게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채근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나의 부당한 바람과 기대를 버리고 보면, 윤희는 참 많이 변화하고 성장했다. 밤을 새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학원을 등록하면 끝까지 다녀서 수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1~2주 정도는 지각하지 않고 알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빚을 지지 않고 자기 수입에 맞춰 돈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매일 밤 불안에 떨며 잠들지 못하는 일도 없어졌다. 다른 또래들보다 많이 늦어졌고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윤희는 자기 나름의 노력을 멈추지 않아왔고 한발씩 내디뎌왔다. 일머리가 없고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해 오래 일하지 못하고 해고 되는 것뿐이다.

윤희는 자신의 노력이 존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세상의 눈으로는 보잘 것 없을지 모르지만, 자기 삶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노력과 극복의 과정들을 칭찬받고 싶어 한다. 윤희를 대하는 마음은 그만큼 더 너그러워지고 더 가벼워져야 한다.
얼마 전 윤희는 정부 전세자금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자기만의 집을 가지게 되었다. 윤희가 늘 겁내던 ‘길거리에 나앉을 걱정’을 당분간은 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서 여러 곳의 집을 알아보고, 가격을 조정하고 계약을 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서른 살의 윤희’는 또 한 단계 성장했을 것이다.

윤희가 집들이를 하면, 오랜만에 크게 칭찬을 해줘야겠다.

이정현
대학에 가지 않고 길을 찾는 청년을 위한 자립학교인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의 사무국장. 더듬더듬 길을 찾아가는 청년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다해 동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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