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 한 사람만을 위한 서점>
정지혜 지음, 유유, 2018년


진정한 창의성은 제약이 많은 환경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5년여 전, 미술관에 서점을 만들기로 할 때 그 당위성을 찾아야 했다. 책을 만들기도 하니까 책을 파는 서점도 동시에 하고 싶은 마음 하나. 전시물은 빨라야 2~3개월에 한 번씩 바꿀 수 있을 뿐인데, 서점은 수시로 책을 바꾸어가며 변화를 줄 수 있으니 미술관 재방문율을 높여줄 것이라는 마음 둘. 그리고 조금 거창하다 싶기는 했는데, 미술관 서점을 시발점으로 동네에 작은 서점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 셋.

그렇게 시작한 서점이건만 요즘 활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이때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 한 사람만을 위한 서점>이라는 제목의 책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서점을 열고 싶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공적인 바람으로 책을 쓴 저자는 ‘사적인 서점’을 준비하고 운영하며 경험한 시간들을 아낌없이 공개한다. 저자는 독자에서 편집자로, 편집자에서 서점원으로 책 곁을 맴돌다가 나답게, 즐겁게,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책방 주인’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서 “직접 읽어 보고 이 책이야말로 이 작가의 진수라고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면 서가를 만들 수 없습니다”라는 문장을 읽고는 내가 읽어 보았기에 손님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서점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방문하는 모든 손님이 서점원과 대화를 나누고 책을 구입하는 형식의 ‘책을 처방하는 서점’으로 방향을 잡는다. 찾아온 손님의 관점과 취향에 맞는 책을 알려주고, 힘든 일을 겪은 손님에게는 마음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건넨다. 손님이 재미있게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어서 읽기 좋은 책을 권하는 일종의 ‘독서 주치의’가 있는 서점이다. 여기에 예약제 일대일 상담이라는 방식을 더해 ‘한 사람을 위한 서점’이라는 ‘사적인 서점’의 슬로건을 완성하였다.

일본의 개성 있는 서점을 쏘다니며 모은 책과 잡화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 ‘주섬주섬장’이라든지, 일본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책을 원서로 읽으며 일본어를 배우는 수업 등도 ‘사적인 서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특히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366일(2월 29일 포함)의 날짜가 적힌 북커버로 책을 포장하고 마음에 드는 날짜가 적힌 책을 고르면 그 날에 태어난 유명 인사의 작품이 엄선되어 있어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거나 다른 이의 기념일에 맞춰 책을 선물할 수도 있는 ‘생일 문고’, 마음을 치료하는 처방 책을 약 봉투 안에 담아서 독자가 봉투에 적힌 다양한 증상 가운데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독서 요법’, 매달 한 명의 작가를 서점 주인으로 선정하여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과 함께 소개하고 싶은 책을 추천하는 특별 서가 ‘이 달의 책방 주인’ 등의 아이디어는 책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상상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의 미술관 서점은 손님들에게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을까? 손님들이 스스로 저자가 되어 직접 그림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서가를 만들면 어떨까? 동네에 꽃집이 새로 생겼던데 꽃과 함께 선물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하면 어떨까? 잘 알고 지내는 편집장님이 요즘 화를 다스리려고 일기를 쓴다는데 그걸 모아서 ‘쪽지 책’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 이제 앞으로 달릴 일만 남았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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