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른후트 성경묵상집 꾸준히 펴내는 홍주민 박사

시몬 베이유를 소환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나 세계적인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가 2차 세계대전의 틈바구니에 끼여 영국 런던에서 난민 지원 활동을 벌이던 중 서른넷의 나이에 절명한 여성!
시몬 베이유에게서 운동과 영성의 결합을 본다. 모든 사회적 실천의 밑바탕에는 고결한 신앙의 힘이 놓여 있어야 한다는. 수원역 앞에서 케밥 식당을 운영하며 난민 구호 활동에 열심을 내며, 매년 헤른후트 성경묵상집을 펴내는 홍주민 목사(한국디아코니아협동조합 대표)의 삶이 딱 그렇다.

▲ 가게 이름이 독특합니다. 왜 YD 케밥 하우스인가요?
= YD는 예멘의 ‘Y’와 디아코니아의 ‘D’를 합친 거예요. 예멘 사람을 섬긴다는 뜻이지요. 작년 초 제주 예멘 사태를 기억하지요?
내전 때문에 국가가 부도 상태에 이른 예멘에서 500여 명의 젊은이가 제주도로 찾아왔잖아요? 안타까운 마음에 당장 제주도로 날아갔지요. 예멘 청년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요. 그런데 그들의 생활환경이 너무 열악한 거예요. 급한 대로 밥부터 먹어야겠다 싶어 ‘난민 디아코니아’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고 지원 활동을 시작했어요.

▲ ‘YD평화열차’ 타고 ‘수원에서 평양 거쳐 케이프타운까지’라는 걸개막이 눈에 띄네요.
= 난민 수용율이 높은 독일에는 케밥집이 무척 흔해요.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이태원과 미군 부대 앞에 몇 개 있을 뿐이지요. 케밥집의 숫자와 다문화의 역량은 비례한다는 믿음으로 케밥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과 지구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까지 담아서! (웃음)

▲ 작년에 제주에 온 예멘 사람들이 주로 청년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4년 넘게 내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군이나 반군에게 강제징집을 당하지 않으려고 피신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몸에 총알 자국이 선명한 청년들도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 도착한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강제송환을 당하면 도착 즉시 사형에 처해질 형편인 거지요.

▲ 제주에 온 예멘 청년들은 그래서 어찌 되었나요?
= 6개월에 걸친 난민심사 끝에 2명은 난민으로, 나머지 412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지요. 56명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 인도적 체류라는 말이 꽤 인도적으로 들리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 우리 국민 중에도 돈벌이 없이 1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하물며 난민의 처지는 더하지 않겠어요. 예멘 난민들은 가족을 먹여 살릴 막중한 책임을 안고 이 땅에 왔어요. 최저임금 180만 원을 받아 150만 원을 송금하면 그 돈으로 여러 명의 가족이 살아가는 구조예요. 하지만 인도적 체류허가로는 안정적인 노동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어려운 문제예요.

▲ 지구시민의 덕목을 외면한 채 ‘각자도생’에 심취한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왜 그렇게 난민 문제에 열심을 내게 되셨는지요?
= 성서적으로는 우리가 모두 난민이지요. 본향에서 나와 이리저리 떠돌다 아버지께 돌아가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역시 난민이었잖아요? 저도 독일에서 10년 동안 머물며 일하고, 또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디아코니아학’을 공부하던 시기에 난민 취급을 받은 경험이 배경이 된 것 같아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마가복음 10장 45절)라는 말씀이 디아코니아학의 핵심입니다. 세상 질서의 역전, 가치관의 전복이라고나 할까요?
저에게 난민 사역은 그런 ‘예수님의 섬김을 구체화하는 길’입니다.

▲ 자기 의지로 섬기는 게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은총의 힘으로 섬긴다는 뜻이겠군요.
=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사회적 실천일수록 영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12년째 헤른후트 성경묵상집을 꾸준히 우리말로 옮겨 펴내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매일의 묵상이 큰 힘이 됩니다. 헤른후트 형제단의 전통은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유럽 각지를 떠돌다 서로 다른 신앙 배경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을 조율하는 구심점으로 톡톡한 역할을 했어요.
전 세계 60개 국어로 번역되고, 100여 개 국가에서 200만 명이 함께 읽는 책이라면, 거기에는 그만한 힘이 있지 않겠어요?

▲ 함께 사역하는 김상기 박사님의 도움이 크시지요?
= 네. 김 박사님은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구약, 특히 창세기를 연구하셨는데, 창세기 앞부분(1-11장)을 장식하는 큰 가르침이 ‘존재의 긍정’이래요. 정말 실력 있는 교수가 여기 와서 겸손히 서빙하며 자원봉사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 틈에서 거꾸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몬 베이유의 관찰에 따르면, 앞의 경우는 중력의 법칙이, 뒤의 경우는 은총의 법칙이 작용해서 그렇다. 중력은 우리를 땅에 묶어두지만, 은총은 우리를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한다. 홍주민 목사와 김상기 목사의 언어와 몸짓에서 하늘 바람이 스치는 건 그 때문이다. 구명조끼 하나 없이 태평양에 던져진 난민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그들의 운동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면 무엇이랴.

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이며, 기독교인문교양 계간지 <이제 여기 그 너머> 편집인으로, 세상의 다채로운 풍경에 신학 사유를 덧입혀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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