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생각하기>, 매튜 크로포드 지음, 윤영호 옮김, 사이
<연필 하나로 시작하는 스케치 연습장>, 우모토 사치코 지음, 류현정 옮김, 한빛미디어


영원히 살고 싶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었는데, 심장은 시신 속에 남겼다. 생전의 행동과 생각을 심장이 모두 기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심장(心臟)’이라는 말을 한자로 풀면 ‘마음이 있는 장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하트’도 붉은 색 심장 모양을 닮았다. 마음은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라고 정의하는데, 이쯤 되면 ‘생각’이라는 것이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 요즘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이른바 ‘생각 기관’은 바로 ‘손’이다. 굳은살 박힌 손 근육과 손끝 감각으로 생각하는 능력. 그동안 내가 너무 오랫동안 머리로만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반성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전쟁 통에는 손재주 있는 사람이 최고였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의 나였다면 못난 가장으로 굶어 죽기 딱 좋았을 것이다.
정치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워싱턴의 유망한 싱크탱크의 책임자로 일하는 등 ‘전형적인 지식노동자’의 길을 걸어온 매튜 크로포드라는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보다. <손으로, 생각하기>를 보면 그는 모든 지위와 혜택을 포기하고 모터사이클 정비사로 변신한다. 그리고 사무실 책상에서 벗어나 직접 농사를 짓고, 뜨개질을 하고, 가구를 만드는 등 손과 몸을 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을 얼마나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지 이야기한다.
“인터넷만으로는 못조차 박을 수 없다”라는 말에는 뜨끔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어쩌다 손과 몸도 맘껏 쓰지 못하게 되었을까?
“현대사회는 손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더 자유롭게 되고, 더 자유롭기 때문에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도꼭지에 손댈 필요도 없이 적외선 수도꼭지 밑에서 기우제 춤을 추는 것처럼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보이지 않는 힘에게 물을 달라고 간청한다”는 말에서는 씁쓸한 웃음마저 난다.

어릴 때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가족 가운데 선풍기, 음향기기, 전자제품 등을 수리하는 전파상 순돌이 아빠가 있었다. 일로 보자면 뭐든지 해결하는 ‘만물박사’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런데 이 시대에 이른바 ‘순돌이 아빠들’이 사라지자 고장 난 물건들을 일상에서 고치기가 어려워졌다. ‘손 때 묻은 물건’이란 말도 오래된 옛말이 되고 말았다. 내 손으로 만들고, 사용하고, 고치는 결과물이 없다보니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가치와 능력을 구구절절 보여주기 위해서 자질구레한 설명을 늘어놓아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내가 일하는 미술관과 내가 사는 집에서부터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다행히 도색공도 아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동안 망설였던 전시장 벽면 페인팅도 무사히 마쳤다(전시장 마룻바닥에 하얀 페인트 똥이 좀 떨어지기는 했다). 유아미술 관점으로 바라볼 때 페인트칠이 대근육을 단련하는 일이었다면, <연필 하나로 시작하는 스케치 연습장>을 꺼내놓고는 연필과 지우개로 소근육을 단련했다(손 근육에 한정한다면 나는 유아와 별로 다르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이 마치 울타리를 페인트칠하는 톰 소여처럼 재미있어 보였는지, 아이들이 옆에서 따라 그리는 뜻밖의 일도 벌어졌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